천안 주민·정치권 "사전동의 없어"

30·31일 700명 전세기편 귀국 예정

"감염자도 아닌데 환자취급" 우려

정부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귀국하는 교민·유학생 등의 임시 보호생활시설을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장소를 충남 천안으로 결정했다가 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발표를 미룬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해당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은 정부가 장소를 다른 곳으로 변경할지 아니면 결정된 장소로 강행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28일 외교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 합동으로 우한 교민·유학생 송환계획을 발표했다. 30일과 31일 이틀에 나눠 귀국을 신청한 700여명을 전세기 4편으로 데려오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과정에서 교민들을 수용할 장소(시설)는 공개하지 않았다. "협의 중"이라거나 "결정된 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중이용시설 터미널 방역작업 | 신종코로나 확산 우려가 이어지고 있는 28일 오후 광주 서구 유스퀘어 터미널에서 서구 보건소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특별방역을 하고 있다. 광주 연합뉴스


정부는 이미 발표 전에 충남 천안에 있는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2곳을 임시 보호생활시설로 결정했다. 정부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장소를 결정한 정황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경찰청과 소방청에는 이미 관할 경찰서·소방서의 지원을 요청했다. 충남도에도 이 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해당 시설에도 동의를 얻었고, 심지어 교민들에게 제공할 식사는 도시락으로 하겠다는 등 구체적인 운영 계획도 마련했다. 시설 운영을 책임 질 행안부도 사전 준비에 들어갔다. 충남도는 이날 정부발표 직후 보호생활시설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공식 발표도 준비했다. 처음 협의를 요청받았을 때는 반대했지만 정부가 최종적으로 장소를 결정해 발표하면 대승적으로 이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정작 이날 오후 장소를 발표하지 못했고, 충남도 역시 기자회견을 슬그머니 취소했다.

정부가 보호생활시설 장소 발표를 못하는 이유는 예상보다 거센 해당지역의 반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천안시장 보궐선거까지 치러지는 4.15 총선도 신경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천안시는 28일 2곳의 국가기관시설이 우한 교민의 보호생활시설로 사용될 수 있다는 소식에 온종일 술렁였다. 해당시설 인근의 일부 주민들은 집회신고까지 내는 등 본격적인 반대시위에 나설 태세다. 이를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도 시작됐다.

지역 정치권도 한 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주민들의 불안감 해소와 투명한 안전대책 수립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천안시는 시장이 낙마,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박상돈 자유한국당 천안시장 예비후보는 "천안에 우한 교민을 격리수용을 하는 것은 천안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기수 더불어민주당 천안시장 예비후보도 "수용시설이 천안으로 결정된 이유와 천안시민의 안전을 위한 사전대책이 무엇인지 먼저 밝혀야 한다"며 절차를 문제 삼았다.

교민 귀국까지 불과 하루 남았다. 30일 1차로 들어오는 교민은 전체의 절반 정도로 예상된다. 도착 장소는 김포공항이다. 이미 전세기 운항 계획이 한국공항공사에 전달됐다. 한국공항공사도 교민 귀국에 따른 사전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정부는 정작 29일 오전까지도 교민 수용시설과 관련해 "결정된 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당장 교민 귀국을 하루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 대책 없이 손을 놓은 모양새다. 해당 지역 지자체와 주민 동의를 얻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이런 행동은 교민들의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귀국하는 교민들은 중국 우한의 열악한 상황을 피해 들어오는 우리 국민이다. 또한 아직까지는 아무런 증상도 없는 상태다. 하지만 잠복기를 의식해 14일간 외부와 격리하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미 일부에서는 이들을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이다. 천안시민 최 모씨는 "과거 메르스사태 때 진료를 거부하던 일부 병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자칫 천안시민들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또 "정부가 주민들과 지자체에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절차를 밟았다면 충남도가 그랬듯 주민들도 대승적 차원의 동의를 했을 수 있다"며 "아무런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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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윤여운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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