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경과보고서 미채택, 대통령은 임명 강행

야당, 경찰고발로 맞대응 … 불신 가중, 악순환

"정보 제공·대통령 견제·예비공직자 학습효과"

"장관하려는 인재 없다? '인재 풀' 확대해야"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2000년 6월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22년째 걸어온 인사청문회에서는 도덕성 검증이 강화되는 추세다. 초기엔 주로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탈세 등 불법이 낙마의 주요 이유가 됐다. 그러고는 친일 가치관, 몰래 혼인신고 뿐만 아니라 전관예우 이해충돌 등 국민적 정서에 위배되는 관행 등에 대해서도 야당과 여론이 '퇴짜'를 놨다. 윤석열정부 내각의 첫 낙마자인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소위 '방석집 논문심사'로 결정타를 맞고 자진사퇴를 선택했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 이름 옆 폭탄 스티커│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지난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간사단연석회의에서 윤석열정부 신임 국무위원 후보자 적격 여부를 표시한 상황판에 국무총리 부적격을 나타내는 폭탄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부분의 낙마자는 무더기 의혹에 이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결정적 결점이 들어나면서 후보직에서 내려오는 경로를 거쳤다. 하지만 많은 후보자들은 자료제출 거부 등으로 검증을 차단하면서 '청문회 하루 버티기'에 나서고 야당에게 흠 잡히기 싫은 여당과 대통령 역시 임명을 강행하는 추세가 강화되는 모습이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없는 야당은 경찰고발로 '정치의 사법화'를 선택해 여야간 강대강 국면으로 악순환되고 있다. 하지만 강력한 도덕성 검증이 일부 신상털기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고위공직자의 도덕성이 향후 개선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성역은 없다' = 도덕성 검증 범위에서 더 이상 성역은 없다. 후보자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 배우자, 자녀까지 후보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거나 후보자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상은 모두 검증대상이다. 2002년 인사청문회 첫 낙마자인 김대중정부 시절의 장상 총리후보자는 부동산 투기와 함께 자녀 국적논란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이후 후보자의 병역과 함께 아들의 병역특혜도 국민정서를 강하게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후보자 청문회에서는 '아빠찬스' '엄마찬스' 등 특권층의 특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한덕수 총리후보자의 고위관료→김앤장 법률사무소→고위관료로 이어지는 '회전문' 행보는 '이해충돌' 논란으로 번졌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등이 반영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잣대가 엄격하고 높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돈과 명예, 권력을 동시에 취하려는 시도나 특권층의 특권의식과 행위에 국민들의 거부감이 강해졌다는 진단이다.

◆"장관 하려는 사람 없다"? = 높은 도덕성 검증이 인재 부재론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인재풀이 너무 좁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이나 청와대에서는 '우수한 인재가 장관 하기를 기피하고 있다'며 강도 높은 도덕성 검증을 탓하는 말을 자주 쏟아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4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능력 부분은 그냥 제쳐놓고 오로지 흠결만 놓고 따지는 그런 청문회가 되고 있다"며 "이런 청문회 제도로서는 정말 좋은 인재들을 발탁할 수 없다"고 했다. 2020년에는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과의 환담에서 "국회 청문회제도가 반드시 개선됐으면 한다"며 "본인이 뜻이 있어도 가족이 반대해 좋은 분을 모시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에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현행 인사 청문회 제도에 개선할 점은 없는지 짚어보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 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하지만 도덕성을 직무수행의 중요한 덕목으로 보는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강도 높은 도덕성 검증을 탓하는 데에 이견이 적지 않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덕성 검증은 직무 검증과 연결되는 중요한 부분이며 미국 등에서는 매우 철저하게 보고 있다"면서 "과도한 신상털기라는 지적이 있고 이에 따라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사생활이 잘 관리된 인재'는 찾기 나름"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정부들이 코드가 맞는 자기 사람 중심으로만 인재를 찾기 때문에 인재풀이 제한돼 있고 그들 중에 인재를 찾으려고 하니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앞으로는 공직에 나서려는 젊은 인재들을 중심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자녀 등 주변관리에 신중할 것"이라고 했다. 과도기를 지난 후에 '문화'로 정착할 때까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그는 "민주주의는 매우 느리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적재적소'가 아닌 '적소적재' 인사원칙을 고집한 것도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적소적재'는 사람을 먼저 찾아 놓고 자리를 정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자리에 맞는 인재를 두루 찾는다는 의미다.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인사기획관을 지낸 민형배 의원은 민주당 인사청문TF단장으로 일하면서 "사람을 먼저 챙긴 뒤 적당한 부처를 찾아 운영을 맡기는 인사방식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직무분석을 먼저 한 뒤 그 직무에 어울리는 역량과 윤리를 갖췄는지 검증하겠다"고 했다.

◆'하루 버티기'와 '임명 강행' 그리고 '경찰 고발' = 야당의 집요한 도덕성 검증에 후보자와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하루 버티기'와 '임명 강행'으로 맞서는 분위기다.

하루 동안 진행되는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잘 견뎌내기 위한 방안으로 '자료 제출 거부'가 주로 활용되고 있다. 후보자뿐만 아니라 자녀, 배우자와 관련한 자료에 대해서는 '개인정보공개'에 동의하지 않아 기관들의 자료 제공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식이다. 윤석열정부 첫 내각 인사청문회에서도 청문회 초반엔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자료제출 부실'에 대한 질책이 강도높게 이어졌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후보자 청문회는 '자료제출 미비'로 연기되기도 했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후보자 청문회는 오전 질의시간 전체를 '자료제출 요구'로 허비했다. 모 의원은 "후보자의 논문 제출을 요구했는데 주지 않아 수차례 요구한 결과 받았지만 결국 내용없는 목록 뿐이었다"며 "어떤 자료에 대해서는 자료는 보내지 않고 (의원실로) 찾아와서 설명하겠다고 해서 거절했다"고 했다.

자료제출 거부는 '검증'을 차단해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는 경로를 막는 역할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가이드라인'은 '의혹'만으로는 지명철회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야당의 '부적격' 판단으로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임명강행된 사례가 많아지는 것도 추세다. 국민의힘이 입법조사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문재인정부에서 청문심사경과보고서 미채택 후 임명강행한 게 24건이다. 노무현정부 3건, 이명박정부 17건, 박근혜정부 10건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규모다. 문재인정부에서는 특히 절대과반 의석을 토대로 청문심사결과보고서를 단독으로 처리한 후 임명한 게 13건에 달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 부적격 후보자에 대한 임명강행 의지가 강해지자 경찰고발에 나설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미 정호영 후보자와 원희룡 국토부 장관후보자에 대한 고발 의지를 공개적으로 보여줬다.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나온다.

하지만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공직 지망자의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회 입법조사처 전진영 입법조사관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결과:역대 정부별 비교와 함의'보고서에서 "최근 들어 일각에서 국회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사례에 초점을 맞춰서 '국회 인사청문제도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며 "그동안 국회 인사청문제도가 운영되어 오면서 공직 후보자의 직무적격성이나 전문성보다 도덕성 검증에 집중되고, 후보자 가족의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가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사청문제도의 긍정적인 영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개적인 인사청문 과정은 국민들에게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고 국회 인사청문 절차의 존재 자체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견제하는 측면도 있다"며 "또한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과 자질에 대해 국민적인 눈높이를 확인하고 공직 지망생에게 이를 주지시키는 학습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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