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70일 앞두고 거대양당의 대선후보를 둘러싼 온갖 의혹과 루머가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양 진영의 '아니면 말고'식 폭로와 무조건적 제편 감싸기는 국민의 실망을 넘어 분노를 야기시킨다.
이런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출연해 경제정책을 논의한 인터넷 방송이 화제다. 이 후보와 윤 후보의 출연 동영상 조회수가 각각 273만과 175만회에 이른다.
며칠 전부터 이 후보는 윤 후보에게 대선 때까지 정기적인 TV토론회를 열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토론이 자칫 말싸움으로 번진다는 이유로 거부하더니 엊그제부터는 대장동 특검 수용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윤 후보는 법적으로 규정된 선관위 주최 토론회 이외에는 이 후보와 직접 토론할 의사가 없는 모양이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늘어놓고 상대를 비난하는 선거운동보다 후보들을 한곳에서 비교할 수 있는 토론회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새로운 방식의 토론회 도입이 필요하다.
대선후보들은 앞으로 각종 언론기관 초청 토론회에 참가할 것인데 대부분의 토론회는 후보별 맞춤형 질문과 예상답변을 준비한 후보들의 응답방식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기존 토론회 방식은 심도 깊은 검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미 진행되었던 관훈토론에 대한 유권자들의 주목도가 높지 않았다는 것이 증거다.
기존의 대선후보 토론회 구성을 보면 도덕적 검증이라는 명분 아래 상대방 약점 들추기나 정치현안을 두고 후보들 간 논쟁하는 방식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모의토론 으로 무장한 후보들의 토론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이런 방식의 구성으로는 후보들의 국가관이나 정치철학을 파악하기 어렵다.
후보 국가관·정치철학 파악할 토론회를
필자는 새로운 방식의 대선후보 평가기회를 제시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6월에 진행된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과 유사한 방식 도입을 제안한다. 새로운 방식의 토론회는 대통령이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후보들의 문제파악과 접근방식을 평가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철학·역사·정치·경제·외교·과학 등의 평가영역을 결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학회들에 의뢰해 후보들의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 질문을 준비하는 것이다. 질문내용은 현실정보를 담거나 가상적 상황을 상정하는 것 모두 가능하다. 후보들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또한 상대후보와 논쟁할 기회를 가진다.
또한 모든 영역에서 후보들이 답변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한두개의 통과카드를 이용해 자신 없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의외성과 긴장감을 높이고자 한다면 토론회 초반에 OX 퀴즈를 준비하고 정답을 맞추는 개수에 따라 10초 발언시간 추가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론의 목적이 정보 기억력이나 임기응변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타인의 조력을 받을 수 없도록 각 후보들에게 고립된 공간을 제공하고 토론회 2~3시간 전에 문제를 전달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문제가 유출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 대선토론회 진행을 보면 후보들이 선거운동에서 수 없이 반복했던 공약들을 다시 재탕하기 때문에 신선함을 느낄 수 없었다. 주도권 토론이라는 방식을 도입했지만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 늘어놓고 상대후보의 발언기회에는 인색해서 시청자들은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될 뿐이다. 사실 언론에서는 TV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시청율과 집중도는 높지 않다.
임기 중 직면할 문제에 대한 리더십 평가
후보자를 선택할 때 후보의 준비된 공약을 비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집권 후 5년 동안 직면할 예기치 못한 많은 국가적 문제들을 어떠한 철학과 인식을 바탕으로 처리할지 후보자 개인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필자가 제시하는 토론회는 기존 토론회에서 볼 수 있는 포장된 대선후보의 모습이 아니라 오롯이 대선후보들의 국정철학과 사고의 깊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 후보는 윤 후보보다 토론에 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토론회 개최를 주장하고 있다. 이 후보가 윤 후보보다 순발력이 뛰어나고 정치경력이 앞서기 때문에 기존 방식의 토론회에서는 능수능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제시한 방식의 토론회라면 이 후보에게 유리하다고 볼 이유가 없다.
이러한 토론회에서는 미사여구의 정치언어를 걷어내고 후보자들의 정치적 내공이 다 드러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리고 유권자들의 관심을 높일 것이다. 윤 후보도 이러한 방식의 토론회라면 수용할 의사가 있지 않을까?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