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데이터 공유해야 '사용자 참여 설계' 가능해

'그린스마트미래학교' 모델이 된 전북 남원 덕과초교의 공간혁신은 박기우(원광대학 건축학과) 교수 손끝에서 시작됐다. 박 교수는 1년간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과 같이 울고 웃었다.

박기우 원광대 건축학과 부교수│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한 후 영국 친환경 하이테크 건축의 대가인 니콜라스 그림쇼 사무소 등에서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많은 혁신적인 최첨단 비정형 디자인 건축설계 실무를 수행했다. 2010년 귀국해 건축사무소 인포마를 열고 다수의 혁신적인 작품으로 대한민국 건축분야 최고권위 상인 '2017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국내외 많은 상을 받았고 2019년부터 전북교육청 학교공간혁신사업 총괄건축가로 다수의 혁신적인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박 교수는 13일 "언어가 아닌 아이들의 행동 눈빛 그림 노래로 대화를 나눴다. 차츰 아이들만의 언어를 배우며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며 "아이들이 쉽게 그리고, 쌓고, 즐겁게 만드는 놀이 공간을 상상했다. 레고로 만든 미끄럼틀과 교실, 불규칙과 충돌하는 도서관, 모서리 다락방 등 아이들이 꿈꾸는 '불규칙한 질서'를 설계도면에 옮겼다"고 말했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이 없는 공간을 꿈꿨다.

학교 구성원 각각의 개성을 존중하고 특성을 담은 학교공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파악하고 데이터화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어려운 과정이 많았지만, 박 교수 설계팀은 세계최고의 학교를 세우겠다는 자부심으로 현장과 소통했다.

지붕은 마을 주변 산과 어울리게 산의 형태로 나타났다. '숲속 동화마을' 같은 지붕 속에 멋진 야외교실도 탄생했다. 학교건물은 최대한 주변 환경이나 시설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멀리서 보면 산 속 펜션처럼 보인다. 공간 가변성도 고민했다. 움직이는 벽은 책상과 의자를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됐다. 어디서든 쉽게 책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장과 도서관이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50년 넘은 표준설계, 공간혁신 발목 잡아"

덕과초교가 완성되기까지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 50년 넘게 사용한 대부분 건물은 '표준설계'에서 시작됐다. 표준설계는 가로 7.5m, 세로10m짜리 교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복도공간은 건축물에서 30%를 넘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간혁신 사업 특징은 '사용자 참여설계'다. 교육부가 교사와 학생이 설계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교육의 주체가 사용할 공간 구성에 참여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렇다고 사용자 참여설계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박 교수는 "사용자 요구사항은 건축가(설계사)의 실력과 상상력으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가는 학생관리 효율성을 내세워 전국 모든 학교를 똑같은 설계도에 맞췄다. 이제 똑같은 구조물을 찍어낸 학교표준설계는 인권유린과 반교육적 공간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이런 학교표준설계는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프레임에서 학생들을 수용했다. 학교가 교도소로 불리는 이유다. 창의성을 키우지 못하는 공간이 학교였던 셈이다. 공간혁신 사업에 참여한 설계팀들은 가장 어려운 대상으로 교육청과 학교관리자를 꼽는 이유다. 교육청과 학교는 디자인 단계부터 예산타령을 하거나, 공간배치나 시설물 설치를 놓고 설계팀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사용자와 건축가의 역할 구분 분명해야

미래학교는 미래를 보고 예측하는 그린뉴딜사업이다. 따라서 설계사의 예측도 매우 중요하다. 폼 나는 학교건물이 아닌, 학생 창의성을 높이고 지역사회 구심체 역할을 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주민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는 "건축가(설계사)는 사용자 요구를 추려 공간 재해석을 통해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래학교로 전환을 위한 공간혁신사업에 있어 사용자와 건축가의 역할 구분을 강조했다.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며 소통하는 협업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설계사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공간 효율성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협업이 안될 경우 설계 과정에서 참여하는 교육청과 학교관리자는 과거 학교건물과 비슷한 기준을 놓고 부딪칠 수밖에 없다. 학생 안전을 이유로 관리자 눈에 다 들어오는 공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보신주의'와 '감시'라는 오래된 습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공간혁신에서 가장 높은 벽이다.

박 교수는 "어른들과 교사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제대로 된 공간혁신 학교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이거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가 아니라, 어떤 환경이 학습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설계사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전문가들이 실제 교육과정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전달해줄 것을 주문했다.

박 교수는 "덕과초교는 아이들과 어른 모두가 꿈을 꾸고 상상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며 "이제 완성된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교사들 몫"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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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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