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미래학교 1호, 다양한 형태 학습 가능한 '러닝센터' 인기 … 공간 변화가 수업의 변화 이끌어

"근대 학교가 이 땅에 처음 들어온 이래, 학교의 모습은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진 한 건축가의 말이다. 이 말은 대중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 학교는 바뀌고 있다. 가장 변화가 느린 고등학교도 변화 대상이다. 학생들이 배울 과목을 선택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됐고 이를 더 확대한 고교학점제 도입을 앞두고 있다.

학교 공간 혁신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디지털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이 과제가 됐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전면 실시되면서 학교의 디지털 시스템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커졌다.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학교 공간혁신 모델을 제시하고 미래형 교육환경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26일 강원 치악고등학교를 찾아 그린스마트미래학교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강원 치악고는 복도 공간을 리모델링해 러닝센터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이론 강의와 토의·토론, 개별학습, 휴식이 모두 이루어진다. 26일 중간고사를 앞둔 1학년 학생들이 교실이 아닌 러닝센터에 모여 시험공부에 한창이다. 사진 이의종


26일 찾아간 치악고는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시험을 앞둔 1학년 학생들은 교실 대신 건너편 러닝센터에서 친구들과 모여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소회의실 안에서 얘기를 나누거나 모둠별 책상에서 마주보고 문제를 푸는 모습도 보였다.

최지윤 학생은 "학교가 웬만한 스터디 카페보다 낫다"며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며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송다현 학생은 "교실보다 러닝센터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 다른 학교에선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라고 자랑했다.

◆똑같은 시간표 벗어난 학교, 공간의 변화를 주문 = 치악고의 공간 변화는 고교학점제 선도학교가 되면서 시작됐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교육으로 기대하지만 우려도 많다. 특히 학생 수가 적은 지방은 교사 수도 적어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선도학교 지정 등 각 지역 현황에 맞는 학점제 모델을 구축하고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 등을 통해 학생들의 수요에 맞추고 개별 학교와 교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치악고는 2019년 강원도 원주 지역에서 처음 고교학점제 선도학교로 지정됐다. 원주는 혁신도시로 강원도 내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느는 지역이다. 치악고는 전교생 855명, 30학급에 이르는 작지 않은 학교다.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원하는 대로 이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과목을 개설했다.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보통교과는 물론 특목고·특성화고에서 개설되는 전문교과도 가져왔다. 2학년은 19과목 중 5과목을, 3학년은 41과목 중 9과목을 선택한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소인수 강의도 최대한 개설한다. 현재 운영 중인 20명 미만 소인수 과목은 7개에 이른다.

이상연 교육과정 부장교사는 이날 "교사들의 수업시수가 다른 학교보다 많은 편이고, 최대 4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도 있다"며 "교육청에서도 시간표가 나오는 게 신기하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치악고는 교사들을 위한 다목적 회의공간 '다온'을 구성했다. 고교학점제 체제에서 늘어난 수업만큼 교사들의 스트레스도 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별도로 수업을 준비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서였다. 사진 이의종


◆다양한 학습형태 보장하는 러닝센터 = 이처럼 다양한 교과가 개설될 수 있었던 건 교사들의 노력과 함께 수업을 할 공간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에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려면 많은 교실이 필요했다. 공간 리모델링이 절실했다.

치악고는 2020년 대대적인 공간 혁신 작업에 나섰다. 8개월 만에 학교는 달라졌다. 다양한 형태의 학습이 이뤄질 수 있는 '러닝센터'가 생겼다. 교사들을 위한 다목적 회의공간도 마련했다.

러닝센터는 2층부터 4층의 복도 공간을 리모델링했다. 이곳에서 이론 강의와 토의·토론, 개별학습, 휴식이 모두 이뤄질 수 있다. 층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3학년 교실이 있는 4층 러닝센터에는 대학 강의실을 연상케 하는 계단식 강의실이 있다. 강의실을 나오면 옆쪽으로 탁 트인 개방형 공간에 카페형 바 테이블 좌석과 소인수 강의가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3층은 블렌디드 수업 맞춤형 강의실로 구성했다. 중앙에 빔 프로젝트와 화이트보드를 설치해 이곳에서 교사가 수업을 진행한다. 그 옆으로는 개별 학습 공간과 모둠별 학습 공간을 분리했다. 학생들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각자 정보 검색과 학습을 진행하고, 다시 중앙 공간에 모여 모르는 점을 질문하거나 발표를 한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벽면을 보고 앉는 개별 학습 공간이다. 마치 독서실처럼 집중해서 자습할 수 있어 시험기간에 특히 인기가 많다.

박성철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시설환경연구센터 연구위원이 공간 설계를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공간을 찾아갈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이를 스스로 활용하도록 했다"며 "명칭과 용도를 따로 정해두지 않은 공간도 있다. 이를 최적의 형태로 활용하는 건 학교 구성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공간의 변화는 수업을 변화시켰다. 전에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이론식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공간 연수 꾸준히 이뤄져야 = 교실에서는 책상을 모둠별로 붙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산발적인 토론이 이뤄져 집중도 어려웠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선 강의식이 아닌 학생 활동 위주의 수업과 스스로 탐구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상연 교사는 "분리된 공간에서 모둠별로 각자 토의를 마친 후 한 공간에 모여서 발표가 이뤄지는 형태로 진행되면 수업의 집중도를 높인다. 교사의 수업권 보장을 위해서도, 학생들의 학습경험을 충족하기 위해서도 이런 공간 조성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악고는 사전기획 단계에서 교육과정과 연계한 공간 설계가 이뤄졌기에 수업에서도 이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다만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교원이 늘어나면서 공간의 활용도가 제한되는 점도 나타났다.

이 교사는 "공간 혁신에 참여한 교사들은 새로운 공간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수업을 진행하는데, 새로 전근을 온 교사들은 학생들이 수업시간 이외에 활용하는 곳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수업과 연계하는 공간 활용에 대한 연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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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양지선 내일교육 기자 j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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