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활용되는지 사후 관리는 필수

치악고의 공간 혁신을 담당한 박성철 연구위원(한국교육개발원 교육시설환경연구센터)은 인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학생과 교사를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는 공간, 이는 단순히 깨끗하고 보기 좋은 곳을 넘어선다. 구성원이 다양한 선택권을 가지며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다. 배움에 대한 동기 부여는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박성철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시설환경연구센터 연구위원│서울시립대에서 건축공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0년간 건설회사에 재직한 건축시공기술사다. 2009년부터 학교 공간 정책 관련 연구를 해왔다. 그 업적을 인정받아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 등재됐다. 2017년과 2019년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우수연구자상을 받았다. 2021년부터 교육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전기획 검토위원을 맡고 있다. 사진 이의종

26일 치악고에서 만난 박 연구위원은 "공간 혁신의 핵심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간을 찾아가고 활용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교사는 아이들이 머무는 곳에서 어떤 수업을 펼칠지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공간을 먼저 만들어야 그 후 자연스럽게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특히 학교 공간은 만드는 것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그 다음 과정이 중요하다. 바꾼 의도에 맞게 실제로 활용되고 있는지 사후 관리는 필수적이다.

박 연구위원은 "교내 수업의 설계와 운영을 총괄하는 교육과정 부장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수업에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의도와 다르게 쓰이진 않는지 파악하고 개선해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학교 구성원에 대한 이해 선행돼야"

2009년부터 학교 공간 정책을 연구해온 박 연구위원이 공간 디자인에 직접 나선 건 치악고가 처음이었다.

새로운 공간이 완성되기까지 8개월이 걸렸는데 그중 3개월을 사전기획에 몰두했다. 총 8번의 워크샵을 진행했고 이 공간에서 직접 생활할 학생과 교사가 참여했다. 학교 밖에서 보고 들은 것으로 막연하게 던지는 아이디어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학교 구성원의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에 가서 직접 만져보고 경험해보며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했다. 학교 안팎의 관계자들과 채팅방을 만들고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소통했다. 특히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합의에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답을 찾았다. 답은 건축가의 시각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의 시각에서 판단하는 것이었다.

박 연구위원은 "학교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 없이 공간 기획이 이뤄져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일반 공간 기획과 학교 공간 기획은 완전히 다르다. 학교 구성원에 대한 이해와 사전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교사 주체의 공간 혁신 필요

학교 측의 요구는 학습 공간에 치우쳐있었다. 반대로 교사들은 쉴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사 라운지 탄생 배경이다. 고교학점제로 교사 1인당 담당할 과목 수가 늘면서 수업 준비나 휴식을 할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박 연구위원은 공간 혁신에서 학생보다 교사들 입장에 무게를 더 둔다고 했다. 그는 "공간 혁신은 학생들을 위한 쉼터를 만드는 게 아니다"라며 "수업시간은 50분, 쉬는시간은 10분이다. 대부분 수업시간이 차지하는데, 교사들을 위한 복지공간이 있어야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수업의 질도 향상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그린스마트미래학교의 추진 주체가 공간 전문가와 교육과정 전문가의 두 축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간 기획가'와 '교육 기획가'라는 용어를 만든 이유다.

"공간 전문가가 하드웨어를 책임진다면, 교육과정 전문가인 교사는 소프트웨어 담당이다. 교사가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수업 방식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가 다른 교사에게 수업을 배운다는 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공간 맞춤형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측면에서 교육 기획가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린스마트'가 없는 그린스마트학교

박 연구위원은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전기획 검토위원이다. 지난해 100여곳에 이르는 대상학교 사전기획을 검토하며 느낀 건 '그린스마트 학교에 그린스마트가 없다'는 점이다. 그린의 핵심은 생태교육이다. 학교 공간 자체가 친환경적이어야 생태교육도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쓰는 에너지 비용 중 가장 많은 게 전력이다. 공간을 늘리기 위해 교실 하나를 여러개로 쪼개면 조명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하나의 빛으로 여러 곳을 밝힐 수 있도록 공간 구성이 이뤄져야 진정한 의미의 '그린스마트' 학교가 만들어진다. 그는 마지막으로 "스마트학교는 맞춤형 개별 학습을 지원하는 공간"이라고 되짚었다.

"단순히 디지털 기기를 구비하고 교내 무선인터넷 환경을 구축하는 것으로 스마트학교가 완성된다고 오해하면 안된다. 교육과정 속에 이를 담아낼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양지선 내일교육 기자 j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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