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지휘부 회의 후 입장문 발표 … 시민단체 "중립성·독립성 약화 우려"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자문위)가 경찰 통제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권고안을 발표하자 경찰이 즉각 반발했다. 일선 경찰들의 반대 성명이 확산되는 가운데 시민단체들도 권고안을 비판하고 나서 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행안부가 법 개정이 아닌 시행령 개정으로 이를 추진할 전망이라 경찰의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 법적 다툼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21일 경찰청은 행안부 자문위의 권고안 발표 이후 김창룡 경찰청장 주재로 전국 지휘부 회의를 진행한 뒤 입장문을 냈다.

행안부 경찰 직접통제 반대하는 시민단체 | 2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경찰개혁네트워크 관계자들이 행정안전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의 경찰 직접 통제 논의에 대한 비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경찰청은 입장문에서 권고안에 대해 "경찰에 대한 민주적 관리·운영을 강화해야 한다는 자문위의 기본 전제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경찰을 둘러싼 그간의 역사적 교훈과 현행 경찰법 정신에 비춰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이번 권고안은 민주성·중립성·책임성이라는 경찰제도의 기본정신 또한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아가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는 상황"이라며 "경찰 운영 근간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어느 때보다 그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또 "사회 각계 전문가를 비롯해 정책 수요자인 국민, 정책 실행자인 현장 경찰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범사회적 협의체를 통해 충분한 의견 수렴과 폭넓은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며 "논의 대상 역시 행정 통제 이외에 시민에 의한 통제와 분권 강화 등 경찰제도 전반으로 확대해 충실하고 완성도 높은 개혁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날 김 청장 주재로 열린 지휘부 회의는 오후 2시 30분에 시작해 2시간 30분 이상 이어졌다.

회의에서 소수 간부는 행안부 경찰국 신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부 간부는 행안부의 경찰 통제 움직임에 크게 반발하면서 법적 대응과 나아가 이상민 장관 탄핵까지 언급하기도 하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전문가 의견을 들어 국민에게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이 유지돼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리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경찰위 "과거로 회귀" = 국가경찰위원회도 이날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경찰행정제도를 31년 전의 과거로 되돌리려 한다는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며 "권고안은 경찰행정을 과거와 같이 국가권력에 종속시켜 치안 사무 고유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앞서 자문위는 행안부 장관의 경찰 통제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대로 이행될 경우 행안부 장관은 경찰 인사, 예산, 감사 등에 전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전국 일선 경찰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경찰 직장협의회는 이날 오후 서울시 중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회견을 열고 "국민적 합의 없는 행안부의 독단적 경찰 통제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권력에 취약한 경찰 탄생과 직결될 것"이라며 "행안부가 경찰국으로 경찰 인사와 예산, 감찰 사무에 관여하겠다는 발상은 경찰의 독립성과 중립성, 민주 견제 원칙을 훼손할 것"이라 밝혔다. 이어 "이미 운영되는 경찰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자치경찰제를 이원화 자치경찰로 바꾸는 등 실질적 견제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며 "경찰 권력 견제에 관한 의견은 오직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 국민 합의에 의한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찰 내부에서는 지휘부가 사퇴를 결단하는 등 항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관은 "이미 임기가 한 달 남은 김 청장이 용퇴를 각오하고 적극적으로 경찰 입장을 대변하고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인권단체 "국회 논의과정 거쳐야" = 시민·인권단체들도 경찰제도개선자문위 권고안에 대해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공권력감시대응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경찰개혁네트워크는 권고안 발표가 있었던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자문위가 논의한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등은 경찰에 대한 행안부의 직접통제 강화"라며 "경찰에 대한 행안부의 권한이 강화될수록 경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약화되고 나아가 경찰을 정치권력에 직접적으로 종속시키는 결과를 다시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네트워크는 "자문위 권고는 경찰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분산시키는 방안은 장기과제로 미뤄두고 대통령-행안부장관-경찰청장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지휘라인을 부활시켜 정치권력이 경찰을 직할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한 것"이라며 "경찰의 문제는 권한이 비대해졌다는 점으로 경찰의 권한 축소와 분산 방안이 우선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네트워크는 또 논의과정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면서 "자문위라는 형식만 거쳤을 뿐 밀실에서 논의된 내용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네트워크는 이에 따라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어떻게 분산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지 공론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국회에서 논의과정을 거쳐 입법을 통해 경찰에 대한 개혁방안이 만들어지고 시행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권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고 "권고안은 명백히 윤석열정부의 권력기관 사유화 의도를 드러낸 것임과 동시에 권력기관 개혁을 위한 오랜 노력의 결과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시대착오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인권연대는 "경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요구에 따라 이뤄진 1991년 내무부 치안본부의 경찰청으로의 독립은 민주주의 과정에서 국민들이 만들어 낸 결과"라며 "경찰국 신설은 그런 면에서 경찰을 국민에게서 떼어내 정권 안으로 몰아넣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검찰정권'이 제도개혁을 빌미로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경찰을 검찰 발아래 두려는 꼼수로 읽힌다"고도 했다.

인권연대는 "경찰권에 대한 통제는 철저히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가 되어야 한다"면서 "경찰국 신설과 같은 상식에도 맞지 않는 안을 내서 대통령령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은 비판을 넘어 국민 저항에 부딪힐 중대한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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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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