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 정교함 부족, 고시원 가구 급증 … 공공임대 확대한다지만 "법 개정이 우선"

정부와 지자체의 반지하 정책이 정교해져야 하는 것은 풍선효과 때문이다. 반지하를 없애려다 또다른 사회문제를 낳을 수 있는데다 대규모 이주정책은 집단적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임대료 수입이 줄어든 집주인이 인센티브에 욕심을 내고 세입자가 반지하 탈출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이면계약이 속출할 수도 있다.

16일 한국도시연구소가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를 분석해 작성한 '인구·가구구조와 주거 특성 변화(1985~2015) 보고서'에 따르면 급격한 반지하 퇴출 정책의 부작용이 확인된다. 반지하에서 밀려난 이들이 고시원 등 더 열악한 주거형태로 옮기는 일이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반복되는 수해로 정부는 2012년 건축법을 개정해 반지하주택 공급 억제에 나섰다. 이후 서울 곳곳 노후 저층주거지역에서 재개발 사업이 추진돼 반지하주택이 줄어들었다.

2005년에서 2015년 사이 전국의 반지하(지하) 거주 가구는 58만7000가구에서 2015년 36만4000가구로 감소했다. 하지만 해당 기간 고시원 등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는 5만7000가구에서 39만1000가구로 늘어났다. 반지하를 없애니 기타 주거 형태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정책의 중요성도 확인됐다. 정부 정책이 집중된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증가세가 직전 5년에 비해 4배 가까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타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는 2010년 12만8000가구에서 5년 사이에 약 26만가구나 늘어났다.

가장 열악한 주거형태를 일컫는 '지·옥·고(지하실·옥탑방·고시원)' 중 가장 빨리 만들 수 있고 가장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고시원이다. 주택전문가들은 이 시기 늘어난 비주거시설 중 상당수는 '고시원'이라고 분석한다. 신규 건립 규모, 사업자 등록 등 자료에 근거해 26만 가구 중 약 20만 가구가 고시원일 것으로 추정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반지하(지하) 가구 16만 가구가 줄었는데 같은 기간 비주거시설 중 가장 열악한 고시원이 20만개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만 놓고보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15년 전국의 지하 거주 가구 비율이 1.9%인데 서울은 6.0%로 3배 이상 높다. 지하에 거주하는 전국 36만 가구 가운데 서울 거주 가구가 23만 가구로 전체의 2/3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지하 뿐 아니다. 전체가구 중 옥상 거주 가구 비율은 0.3%인데 서울은 0.8%로 월등히 높다. 취약층 주거 개선대책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 대책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풍선효과를 막으려면 단기처방이 아닌 중장기적이고 세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소장은 "통계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일시적인 반지하 퇴출정책은 주거 취약층을 더 열악한 주거시설로 내모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이주대책, 자가와 세입자를 분리한 주거보전 정책 등이 실사에 기반해 촘촘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지하 대책의 또다른 문제점은 당국의 실현 의지다. 주거권네트워크 등은 성명을 통해 "장기적으로 지하·반지하 주택을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현재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부담가능한 수준의 대체주택 공급, 지하에서 지상의 민간주택으로 이주하는 것이 과도한 부담이 되는 가구에 대한 주거비 보조 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서울시 대책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법을 고치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여전히 지하주택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한다는 규정이 없고 고시원은 별도 주거기준을 마련해 신규 건축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 문제라고 치부하고 실질적 문제해결을 도외시할 것이 아니라 지하주택을 최저주거기준 미달이라고 법으로 정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주거사다리 놓으려면" 연재기사]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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