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넘어 취약층 주거 종합대책 필요 … "새집보다 헌집이 문제" 주택정책 변해야

폭우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반지하 문제가 전면에 부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10가구 중 1가구는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집에 살고 있다. 취약층 주거는 한쪽을 누르면 다른쪽이 부풀어 오른다. 반지하 뿐 아니라 취약층 주거 전반에 대한 종합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신규 공급 일변도인 현 주택정책 무게중심을 주거 빈곤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주거빈곤 개선 속도 느려져 = 17일 한국도시연구소가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기준 미달 가구)는 156만 가구(2015년 기준)에 달한다. 전체 가구의 8.2%에 해당한다. 최저주거기준은 면적, 방의 갯수, 상하수도 시설 , 화장실 유무 등 생활에 필요한 주거의 최소 기준을 법으로 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법이 정한 최소 주거면적은 1인당 14㎡다.

기준 미달 가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긴 하다. 2000년 407만 가구(28.7%) → 2005년 254만 가구(16.1%) → 2010년 203만 가구(11.8%) 등으로 감소세를 보여왔다.

눈여겨볼 것은 감소 규모다. 통계에서 보듯 감소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엔 153만 가구가 줄었는데 2005년에서 2010년 사이에는 51만 가구 밖에 줄지 않았다.

더구나 이 통계엔 담기지 않은 수치가 있다. 우리나라 최저주거기준은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이보다 더 주거환경이 열악한 주택이외의 기타 거처 가구는 별도로 산정해야 한다.

기타 거처 가구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0년 6만에서 2010년 13만, 2015년 39만 가구까지 늘어났다. 특히 2010년~2015년의 증가규모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고시원을 중심으로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집이 아닌 곳에 살고 있는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주택 이외의 거처, 지하·옥상 거주 가구를 모두 포함하는 주거빈곤 전체 가구 규모도 줄어들기는 했다. 2005년 305만 가구(19.3%)에서 2015년 228만 가구(12.0%)로 감소했다. 하지만 5년 단위 감소규모는 지속적으로 작아지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 관계자는 "빈곤층 주거개선 속도가 과거에 비해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16일 정부는 반지하 등 재해 취약주택과 거주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선다는 내용을 포함한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에 위치한 반지하 가구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서울, 기준미달가구 비율 갈수록 증가 = 특히 서울의 주거빈곤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도별 기준 미달 가구 비율을 살펴본 결과 가장 높은 곳이 서울(10.8%)로 나타났다. 서울의 기준 미달 가구 비율은 1995년~2005년까지는 전국 평균보다 낮았지만 2010년 14.4%로 전국 평균(11.8%)을 넘어섰고 2015년에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 됐다.

고시원 등 주택이외 기타 거처 가구 상황도 다르지 않다. 서울은 주거빈곤 가구 비율이 18.1%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 3위를 기록한 경북(13.1%), 제주(13.0%) 등과도 격차가 크다.

반지하를 넘어 취약층 주거 전반에 대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같은 현실 때문이다. 그나마 반지하는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거나 초과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주택이외 거처 등 주거빈곤층 전반으로 눈을 돌리면 여전히 대한민국 10가구 중 1가구, 특히 서울의 경우 5.5가구 중 1가구가 주거빈곤 상태에 놓여있다.

빈곤 뿐 아니다. 이번 폭우에서 확인됐듯 취약층 주거에는 침수 피해라는 악재까지 겹친다. 취약층 주거의 문제는 수해에 그치지 않는다. 폭염, 폭설로 인한 인명 사고, 쪽방촌같은 밀집주거 시설의 경우 감염병 취약성 등 여러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반지하를 없애면 고시원이 늘어나고 수해 뿐 아니라 폭염, 폭설 피해도 집중되는 등 하나의 문제만 다뤄선 해법을 얻을 수 없다"며 "취약층 주거 전반에 대한 종합적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공급중심 주택정책 변화 필요 = 신규 공급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존 주택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고가 날 때마다 '앞으론 인·허가를 내주지 않겠다' '신축건물에 대해선 반지하를 허용하지 않겠다' 등 미래 얘기를 주로 꺼낸다.

하지만 주택문제 전문가들은 "문제는 새 집이 아닌 헌 집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지을 집보다 기존에 지어진 집이 월등히 많은 상황에서 기존 집 개선 문제를 다루지 않는 주택정책은 문제의 해결을 지향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불법 건축물 문제가 대표적이다. 반지하 건축, 옥탑방, 불법 증축 등 숱한 문제를 낳고 있는 불법 건축 관련 법 개정 및 강화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최저주거기준을 높이는 문제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고시원 등 기타 거처는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종합 대책이 아닌 인기영합식, 땜빵식 주택정책은 지난 정부 실패를 되풀이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같은 미봉책, 신규공급 위주 주택정책으론 이번 정부도 실패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문재인정부가 집값을 올리려 했던 게 아니다. 현장을 모르고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정책을 구사하는 바람에 부동산 폭등과 전월세 문제를 잡지 못한 것"이라며 "정부와 서울시 대책이 수해에 집중하느라 반지하 대책에 한정되거나 여전히 신규공급 중심에 머문다면 주택정책 전반에서 성공을 거두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주거사다리 놓으려면" 연재기사]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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