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예산안에 편성된 기부금 ... 연간 ODA 예산 30억달러의 1.7% 규모
문재인정부도 개도국 지원 확대 … "야당이 반대할 이유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을 촉발한 '글로벌펀드 기여'를 위한 예산이 이미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된 사실과 상세내역이 처음 확인됐다.
27일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8월말 확정된 정부예산안 중 외교부 '글로벌보건기여사업'이란 예산항목으로 5000만달러(약 700억원)가 편성됐다. 정부는 앞으로 2년간 나머지 5000만달러를 추가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비속어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이 해명한 '국회 동의 걱정'은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뉴욕에서 주최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 회의장을 나서며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XXX 쪽팔려서 어떡하나"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됐다. 언론과 야당에서 'XXX'를 '바이든'으로 해석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국회승인 걱정한 발언"이라고 했지만 = 논란이 커지자 15시간 뒤 김은혜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돼 있다"고 해명했다. 이 회의에서 바이든은 60억달러, 윤 대통령은 향후 3년간 1억달러를 글로벌펀드에 기여하겠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실 해명은 '바이든을 지칭하지 않았고, 1억달러 기여에 대한 야당의 국회 동의를 염려한 발언'이란 취지다.
하지만 내일신문 취재 결과, 당시 윤 대통령이 뉴욕 행사장에서 야당의 동의를 염려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윤 대통령이 약속한 '글로벌펀드 기여금'은 2023년도 정부예산안 중 외교부의 '글로벌보건기여사업'이란 이름으로 5000만달러(약 700억원)가 편성됐다. 향후 2년간 나머지 5000만달러가 반영될 예정이다.
정부예산안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이 예산만을 별도로 국회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다만 오는 12월로 예정된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전체 예산안에 대한 국회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발언이 3개월여 뒤 예정된 국회의 예산안 동의까지 염두에 둔 것일까.
◆해외지원(ODA) 예산, 여야 없었다 =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기재부 안팎의 시각이다. 전직 기재부 고위인사는 "역대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ODA 예산을 놓고 여야가 공방을 벌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거꾸로 ODA 예산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정권 성격을 막론하고 지원규모를 확대하는 추세였다. 문재인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여야가 이견을 갖지 않는 정치색깔이 없는 예산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 '공여국 클럽'인 OECD DAC(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면서 '원조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전환했다. 한국의 ODA 지원실적은 국제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상승 추세다. 2016년 19.6억달러, 2017년 22억달러, 2018년 23.5억달러, 2019년 25.2억달러, 2020년 22.5억달러, 2021년 28.6억달러로 점차 늘어났다. 2020년엔 코로나19 영향에 따라 감소했다. ODA 연평균 증가율은 9.7%을 기록하고 있다. ODA 규모로는 아직 세계 15위권이지만, 증가율로는 최상위권이다.
특히 코로나19 발발 이후 문재인정부는 보건분야 ODA 확대에 공을 들였다. 2021년 6월 G7정상회의 보건확대회의에 초대됐던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개도국에 백신을 공급하는 국제 프로젝트인 코벡스를 통해 올해 1억달러(당시 원화가치 약 1166억원)달러, 내년에 추가로 1억달러를 공여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지원규모도 우리나라 전체 ODA예산과 비교하면 소소한 규모다. 내년 예산안에 반영된 기여금 5000만달러는 2021년 기준 ODA 총예산(28.6억달러) 중 1.7% 수준이다. 야당입장에서 보면 ODA 총규모의 1.7%에 불과한 국제기여금 예산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야당이 반대할 이유 없다" = 논란의 중심에 선 글로벌펀드 역시 의료지원 ODA를 위한 국제기구다. 3대 감염병 질환인 에이즈와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목적으로 전 세계가 협력해 2002년 설립됐다. 글로벌펀드는 20년간 총 554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개도국의 3대 감영병 예방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미국 60억달러, EU 42억달러, 캐나다 13억달러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김영배(더불어민주당·서울 성북구갑) 의원은 "우리나라 경제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인도적 지원을 늘리는 일은 오히려 민주당이 앞장서 하고 있는 일"이라며 "야당이 됐다고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이 (정부예산안 가운데) 주시하는 사안은 부자감세나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산홀대 여부"라면서 "윤 대통령이 뉴욕에서 글로벌펀드 예산에 대한 야당 승인을 염려해 소동이 일어났다는 대통령실 해명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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