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견 뷰스앤뉴스 편집국장

올해 경기가 작년보다 더 나쁠 것이란 전망은 이미 상식에 속한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2일 신년사에서 "작금의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덩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혹한기 또는 빙하기가 왔을 때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것"이라며 '빙하기'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는 올해 경제환경에 대해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원자재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크라이나전쟁과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 등으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는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며 "국내 경기도 이런 영향으로 실질구매력 저하와 소비심리 위축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경기침체의 후폭풍은 거세게 몰아닥치고 있다. 한 자영업자는 "코로나19가 강타했을 때보다 실물경기가 더 나쁘다.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오르니 사람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지갑을 닫는다'는 표현보다 '쓸 돈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싶다.

우선 지난해 증시에서만 시총 567조원이 증발했다.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으로 글로벌 자산거품이 터지면서 주식투자자들에게 최악의 한해가 됐다.

특히 개미의 피해가 컸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6조8000억원, 11조3000억원을 순매도하며 3년째 매도세를 이어간 반면, 개인만 16조6000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외국인은 4조2000억원, 기관은 2조2000억원을 각각 순매도한 반면 개인만 8조6000억원을 순매수했다. 개인이 작년같은 급락장에서 순매수한 액수만 27조2000억원이다.

코로나19 강타 때보다 실물경기 더 나빠

주식만 그런가. 전체 비금융자산에서 77.5%, 3/4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국민 순자산은 1경9808조8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4%(2029조9000억원) 급증했다.

항목별로는 부동산이 대부분인 비금융자산이 1경9026조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0.3%(1778조1000억원) 늘었다. 이 가운데 토지자산(1경680조원)은 전년보다 10% 늘었다. 국내 주택(부속토지 포함)의 시세를 합한 주택 시가총액은 6534조1876억원으로 1년 만에 14.1%(808조4488억원)나 불어났다. 문재인정부 출범 전인 2016년 말(4005조1723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63.1%(약 2529조원) 폭증했다.

이처럼 엄청난 비금융자산 거품이 미 연준의 공격적 금리인상으로 지난해 5월부터 무서운 속도로 파열하기 시작했다. 국토부 산하 한국부동산원은 지난해 아파트값이 4%대 떨어진 것으로 집계하나 현장 중개업소 등에선 "아파트값이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십수억원씩 폭락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분양 아파트 숫자는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위험선'이라고 말한 6만2000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크게 많은 35여만 가구의 신규아파트 입주가 예정돼 있다.

문재인정권 때, 아파트값이 폭등한 것은 '공급부족' 때문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경쟁적으로 아파트 건설에 나섰다. 그 결과, '공급과잉' 사태를 초래하면서 미분양 급증이라는 부메랑을 자초한 양상이다. 미분양 급증은 아파트값 추가 하락 외에, 자금력이 약한 건설사 연쇄도산과 PF 등 부동산대출 부실화에 따른 제2금융권 위기 촉발 같은 거센 후폭풍을 예고한다.

이같은 주택가격 급락에도 금리상승에 따른 대출상환부담이 역대 최고를 경신, 가계의 소비여력을 탕진시키고 있다.

2일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전국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89.3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가장 높았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서울의 경우 주택구입부담지수가 214.6으로, 2분기(204.0)보다 10.6p 급등하면서 사상 최고를 경신했다. 이는 서울의 중간소득 가구가 지역의 중간가격 주택을 구입할 경우 소득의 54%를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러니 나날이 소비가 꽁꽁 얼어붙는 것도 당연하다.

전세계적 '자산거품 파열기' 도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집값에 대해 "문재인정부 초기로 돌아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소신 발언을 했다. 거품 파열의 과정에 고통스럽더라도 과거처럼 직장인이 월급을 모아 제집 장만을 할 수 있을 때만 소비도 살아나고 세계 최악의 저출산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자산거품 파열기'다. 그 과정은 격렬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수년 뒤 "그래도 거품이 빠진 건 잘된 일"이라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거품이야말로 경제를 좀먹는 마약이기 때문이다.

박태견 뷰스앤뉴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