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셔틀외교 복원' … 기시다 강제동원 피해자에 "마음 아파"

후쿠시마 시찰단, 원자력안전기술원·해수부 소속 등 전문가로 구성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답방으로 52일 만에 한일정상회담을 열었다. 대통령실은 12년 만에 양국 셔틀 외교 재개,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유감 표명,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시찰단 파견 합의 등의 성과에 내심 고무된 분위기다. 그러나 오염수 시찰이 사실상 방류 수용의 절차로 이해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국내여론의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3월의 기시다, 5월의 기시다 달라" =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8일 "기시다 총리가 달라졌다"며 "3월의 기시다와 5월의 기시다가 다르다"고 평가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유감표명 자체가 기대 이상이었다는 반응이다.

공동 기자회견 마친 한일 정상 |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란히 걷고 있다. 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고위 관계자는 "3월 회담 당시엔 밀린 숙제 하듯 의제 아닌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면 이번엔 안보·경제협력, 한일 미래, 청소년 등 우리가 원했던 의제만 맞춰서 준비해 왔더라"고 말했다. 이어 "3월 당시만 해도 (기시다 총리가) 자국 여론을 의식하며 윤 대통령에 대해 잘 몰랐던 모습이 역력했다"며 "이후 윤 대통령이 결단하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신뢰가 쌓인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한일 외교당국은 이달 내 후쿠시마 시찰단 파견을 위해 실무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 해양수산부 등 유관 기관의 전문가들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의 합류는 고려치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이미 원자력안전기술원이 도쿄전력에서 공개하고 있는 오염수 관련 데이터를 계속 분석해 그 결과를 IAEA로 보내고 있는 중"이라며 "분석과정에서 생겼던 의문을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전문가들에게 직접 묻고 답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시찰단 파견이 오히려 오염수 방류를 추인해 주는 절차를 밟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며 "일본 언론이 그런 이야기를 먼저 흘리면서 국내 여론을 자극할 것이고 상황이 심각해질 경우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파동' 사태가 재연될 우려도 있다"고 봤다.

◆윤 "의미 있는 조치 바라" 기시다 "우려 잘 인식" = 앞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는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전방위 협력 확대에 뜻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통해 정상간 셔틀외교 복원, 그리고 양국관계 정상화가 이제 궤도에 오른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도 "우리의 셔틀 외교는 계속된다"며 "다음은 히로시마에서, 그 이후에는 국제회의를 포함해 윤 대통령과 빈번히 만나 신뢰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일한 관계 강화의 기운을 확실히 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회담 합의 사항에는 한국 전문가의 후쿠시마 오염수 현장 시찰, 북한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협력, 반도체 등 공급망 공조 등이 포함됐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후쿠시마 현장 시찰과 관련,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요구를 고려한 의미 있는 조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시다 총리가 이웃 국가인 한국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도 "한국 국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점은 잘 인식하고 있다"며 "자국민(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형식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사후 브리핑에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의 경우 "의제에 포함되지도 않았고, 논의가 오가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회견에서 예정 없이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지난 3월 6일 발표된 (강제징용 해법 관련) 조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분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음을 열어주신 것에 감동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가 한국 정부의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 이후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다만 그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사죄'와 '반성'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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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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