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권한 부실, 초기 증거인멸 못 막아

조직개편 준비 … '조사수단 확대' 검토

금융감독원장이 불공정거래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금감원의 조사권한 확대 없이는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불공정거래행위 단속의 최일선에 있지만 현장조사권 조차 없는 상황이다. 계좌추적 등을 통해 혐의를 포착하더라도 자료제출 요구 등 임의조사권만 있어서 즉각적인 대응이 사실상 어렵다. 금감원의 조사를 눈치 챈 혐의자들의 증거인멸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조만간 자본시장조사부서에 대한 조직개편 단행과 함께 조사수단 확대를 포함한 대응방안을 추진할지 검토하고 있다. 이 원장은 23일 열린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유관기관 합동토론회에서 "조사업무 조직 체계를 개편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현재 기획조사국, 자본시장조사국, 특별조사국 등으로 이뤄진 조직 부문 간 업무의 칸막이를 제거해 업무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공정거래 수사·조사업무를 담당했던 전직 금융당국 직원은 "조사수단 확대가 뒷받침되지 않는 조직개편은 반쪽자리"라며 "증거 확보를 위한 영치권(제출된 물건·자료의 보관 권리)과 현장조사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증권·금융분야 전문가인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도 "불공정거래 혐의자들의 방어권은 강화된 반면, 금감원의 조사권은 약화됐다"며 "조사수단 확대와 강화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2009년 이전까지 영치권과 현장조사권을 갖고 있었다. 당시 증권거래법은 해당 내용을 포괄적으로 금감원에 위임했지만 증권거래법이 자본시장법으로 통합되면서 이 같은 조사수단은 사라졌다.

현재 금감원은 주식 매매분석과 금융거래정보 요구, 문답조사와 자료제출요구 등 임의조사 수단만 활용하고 있다. 계좌추적권은 있지만 경찰이나 검찰처럼 금융기관들으로부터 특정 계좌의 거래내역을 한꺼번에 받는 구조가 아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신속한 대응을 위한 현장조사권과 휴대폰·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삭제된 내용 등을 복구할 수 있는 디지털 포렌식 기술의 발달로 영치권은 증거 확보를 위한 중요 수단이 됐다.

금감원은 지난 2019년 발간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30년사'에서 "스마트폰의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SNS가 투자자간 정보공유의 핵심수단으로 등장했고 이를 이용한 새로운 유형의 증권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런 유형의 증권범죄를 효과적으로 적발하기 위한 적절한 조사수단이 확충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불공정거래혐의자 방어권 강화됐지만 조사수단은 '약화'" 로 이어짐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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