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으로 안건·대상 범위 확대 필요

금융사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 강화해야

전 세계적 기후위기가 경제시스템을 위협하는 가운데 해외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투자대상 기업에게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촉구하는 수탁자 책임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의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은 지구를 살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해당 기업의 산업 경쟁력 확보 및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제도적 한계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주주총회 의결 및 주주제안 범위가 상법과 정관이 정하는 사안 안에서만 가능해 기관투자자 등 주주들의 환경·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 반영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학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후공시 요구 확대 예상 =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글로벌 표준화로 사용할 첫 번째 ESG 공시기준을 발표하면서 기업의 기후 관련 정보공시 요구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위기 대응에 따른 각종 규제와 무역 제재로 인해 기후위기가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에 투자나 대출을 한 금융회사들도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해당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과 관리실패는 금융사들에게도 불똥을 튀기며 경제와 금융안정성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유엔(UN) 책임투자원칙(PRI)이 발표한 스튜어드십 2.0에서는 수년 전부터 기관투자자들에게 투자대상 회사의 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기후변화와 같은 시스템 이슈에도 수탁자로서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인 이익과 장기 리스크 관리를 요구하라는 지침이다. 2020년에 개정된 영국 스튜어드십 코드에서는 주요 ESG 요소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를 포함한 스튜어드십 활동과 투자를 시스템적으로 통합할 것을 요구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스튜어드십 활동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도 강화되고 있다. 기후변화를 경제시스템 전반을 위협하는 리스크로 인식한 기관투자자들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세우고 관련 성과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는 다양한 ESG 관련 주주제안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 투자자들은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를 바탕으로 ESG 관련 제안을 쏟아내며 올해 4월에는 500건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및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효정 KB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응 움직임을 촉진하기 위한 기후 스튜어드십 도입이 필요하지만 한국 시장 구조 또는 제도적 차이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연기금 등 대형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응 관련 주주활동 지침이 개정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후 스튜어드십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 연구원은 또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자발적인 기후행동 100+ 같은 글로벌 기후 스튜어드십 이니셔티브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트폴리오의 기후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기후행동 100+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기관투자자는 안다자산운용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주주제안 급증했지만 부결률 높아 = 최근 국내에서도 주주행동주의가 관심을 모으며 주주제안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주주제안 내용이 한정되어 있고 부결률 또한 높다.

한국ESG기준원이 최근 3년간(지난 2021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기업 주주총회에 상정된 121개 기업(코스피 55곳, 코스닥 66곳)의 주주제안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주제안 안건 수가 전년대비 37%가량 증가했다.

안건별로는 배당 확대, 이사 선임 뿐 아니라 임원보수에 대한 견제와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대한 주주제안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주주환원 강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주주제안의 부결률은 높았다. 개인주주가 상정한 주주제안은 최근 3년간 1건만이 가결됐다.

특히 소액주주연대를 중심으로 한 주주제안은 가결된 사례가 하나도 없었다.

기후위기나 ESG 등에 관한 주주들의 제안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현행 제도 상 주주총회 의결 및 주주제안의 범위가 상법과 정관이 정하는 사안으로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속력은 약하면서도 경영진에 영향 = 다양한 이슈에 대한 주주의 적극적인 관여활동은 경영진과 지배주주에 대한 감시·견제의 의미와 더불어, 기후변화를 비롯한 ESG 이슈와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기업의 대응을 높일 수 있다.

이에 상법 개정으로 통한 주주제안 범위확대와 권고적 주주제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권고적 주주제안이란 주주제안으로 올라온 의안이 주주총회에서 결의요건을 충족해 통과하더라도 곧바로 효력이 발생하거나 경영진에 의무를 지우지 않는 형태의 주주제안을 말한다. 구속력은 약하면서도 회사의 경영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연구원(변호사)은 "현행 주주제안은 주총 결의사항으로 한정되고, 반드시 결의사항으로 운영되어 주주와 회사의 대결구도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며 "권고적 주주제안은 이사 권한과 재량을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주주의 적극적인 관여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균형적인 제도로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연구원은 "주주제안이 가결되면, 이사회에 '권고' 자체는 이행돼야 하므로, 구속력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ISSB,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발표"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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