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신한대 교수, 언론인

석달 전 이 지면에 'KBS 수신료가 정치권 볼모된 이유'란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정치권이 KBS 수신료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바꿔가며 '여당 땐 찬성, 야당 땐 반대'한다는 '여찬야반' 공식을 소개한 내용이다. 여기서 찬반은 수신료 인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당이 되면 수신료 인상에 찬성하고, 야당이 되면 반대한다는 뜻이다. 여당 입장에서 KBS는 도와주어야 할 '우리 편', 야당 입장에선 제어해야 할 '상대 편'이 된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주는 공식이다.

요즘 핫뉴스로 떠오른 KBS 수신료 이슈에서도 외양상 '여찬야반'은 그대로다. 하지만 문구만 같을 뿐 본질은 정반대다. 이번 사안은 수신료 인상이 아니라 수신료 '분리징수'다. 수신료를 지금처럼 전기요금에 합산해 걷지 말고 따로 징수하는 방안이다.

KBS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별도로 고지하면 제대로 걷힐 리 만무하다. KBS 방송을 보지 않는다는 사람, 가끔 보지만 방송 논조에 불만 있다는 사람, 불만은 없지만 굳이 돈 내기는 싫다는 사람까지 너도 나도 내지 않으려 들 게 뻔하다. 텔레비전 수상기를 가진 사람은 의무적으로 수신료를 내야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긴 해도 이를 강제할 실질적 수단은 없다.

분리징수가 시행되는 순간 수신료 수입은 반의 반토막이 날 공산이 크다. 전체 재원의 절반을 수신료 수입에 의존하는 KBS로서는 존망이 걸린 문제가 분리징수다. 여기에 여당이 찬성, 야당은 반대하는 것이니 예전 공식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예전에는 어느 정당이든 집권만 하면 KBS를 팍팍 밀어주었는데, 이번 여당은 낭떠러지에서 밀어버리는 셈이다.

여권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는 이유

어떻게 된 일일까. 지금의 집권여당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국리민복 차원에서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옳은 정책이라고 생각해 밀어붙인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보다는 정파적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권력 잡은 정치세력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방송이 '우리 편'이기를 원한다. 이 희망은 적어도 지금까지 크게 어긋남이 없었다. 당사자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KBS는 어느 정권에서든 음으로 양으로 살아있는 권력 편이었다.

그런데 윤석열정권이 들어선 이후 KBS는 달라진 게 없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종전 여당 추천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최고경영자는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이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KBS는 여전히 전 정권, 즉 현 야당 편이라고 윤석열정권은 인식한다. 이 와중에 수신료 분리징수를 들고 나왔으니 미운 KBS 혼내주기 위해 시한폭탄을 떨어뜨린 셈이다.

몇달 전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토론 주제로 이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방송가에선 설마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수신료 재원을 실제로 틀어막아 KBS를 심각한 경영난에 빠뜨리면 정권에 좋을 게 없다. 정권 입장에선 국내 최대 방송사를 적대관계로 돌리기보다 적당히 압박하고 길들여서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상책이다. 그래서 째깍째깍 폭탄이 타 들어가는 동안 모종의 방법으로 뇌관을 제거해주는 시나리오가 있을 것이란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공식 권고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까지 마친 지금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느낌이다. 그것도 초스피드로 진행되어 이르면 이번달 중 수신료 분리징수 법령이 공포 시행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야당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겠지만 그들도 과거 똑같은 내용의 분리징수 법안을 발의했던 만큼 명분이 약하다.

여기에 김의철 KBS 사장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재촉하기도 했다. 그는 난데없이 "대통령실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를 철회하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괘씸죄 외에 얻을 게 없다.

공영방송 존재의 의미부터 재정립할 필요

윤석열정권의 진의가 무엇이든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다. 수신료 분리 징수는 나름의 모순점과 나름의 설득력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정파적 관점을 배제한다면 반은 옳고 반은 잘못된 제도다.

정답은 다른 곳에 있다. 요즘 같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 공영방송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 국가기간방송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재정립하는 일이다. 수신료 해법은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마련된 뒤에나 나올 수 있다. 우선은 KBS에 떨어진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하고 본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이종탁 신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