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듣노라면 중국의 전투기들이 툭하면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침투하고 중국 잠수함들은 대만 주변 해역에 출몰해 작전을 벌인다는 보도가 나온다. 만약 이곳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다면 대만 해군이나 공군이 아니라 중국 인민해방군과 미군이 비행기와 군함을 동원해서 전투를 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보름전 대만을 여행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긴장감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는데 타이페이 분위기는 차분했다. 시장은 왁자지껄하고 관광지마다 사람들로 넘쳐났다. 한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많았다. 코로나 팬데믹 전엔 중국본토로부터 단체관광객이 몰려왔지만 지금은 본토인들이 떠드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대만은 3000m 넘는 봉우리가 240개나 되는 산악국가다. 산악 고속도로에는 터널이 거미줄처럼 뚫려 있다. 중국군의 상륙에 대비해 고슴도치처럼 땅속에 굴을 파서 시설을 숨겨놨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국과 대치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대만은 비행기와 군함과 미사일로 무장된 거대한 항공모함과 같다. 일본열도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섬들이 줄을 이어 중국대륙을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비전문가 눈에도 대만이 만약 중국 수중에 들어가면 중국 군함들이 서태평양을 마음대로 누비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견제하고 나설 것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는 건 어려울 듯 싶다.

TSMC의 모리스 창, 엔비디아의 젠슨 황

대만엔 또 하나의 안보 대들보가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기업 TSMC다. 아시아 최대 기업이고 애플을 비롯해 전세계에 반도체를 공급한다. 연간 4000억달러의 반도체를 수입하는 중국도 TSMC가 공급하는 반도체로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해왔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TSMC가 파괴된다면 세계는 반도체 수급대란이 일어난다.

오늘의 대만을 있게 한 것은 반도체 기업 TSMC와 그 창업자 모리스 창(92, 張忠謀)이라 할 만하다. 모리스 창은 공산화 이전 중국에서 태어나서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작가가 되고 싶어 1949년 하버드대학에 입학해 셰익스피어를 전공했으나 당시 동양인에 대한 차별을 보며 먹고살 일이 걱정돼 MI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포드자동차 입사시험에 합격했으나 1달러를 더 주겠다는 전자회사에 들어갔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텍사스인스투르먼트(TI) 입사였다. 당시 갓 피어오른 반도체 부분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곳에 근무할 때 일본의 반도체기업을 구경했고 대만도 들렀다.

1985년 대만의 경제장관 리궈딩(李國鼎)은 진취적인 공직자였던 모양이다. 그는 일찍이 반도체의 미래를 읽고 모리스 창을 불러 "돈에 구애받지 말고 반도체공장을 만들어달라"고 제의했다. 당시 반도체 공정에서 일본이 미국을 앞서갔고 모리스 창은 일본에 근무하는 동안 일본여공들의 손재주와 작업능률을 확인했다, 그는 응낙하고 TSMC를 세웠다.

모리스 창의 사업 능력은 반도체생태계를 꿰뚫어 봤던 혜안이었다. 반도체는 크게 디자인만 하는 팹리스(Fabless)와 팹리스 위탁으로 제조만 하는 파운드리(Foundry)로 나뉘는데 TSMC는 팹리스가 설계한 대로 성실히 만들어주는 한편 반도체 정밀도를 높이는데 투자를 했다.

팹리스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공장을 짓지 않고 파운드리에 맡겨 생산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것이 파운드리 회사가 반도체 설계에 관심을 갖고 디자인을 훔쳐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긴다. 모리스 창은 'TSMC는 절대 설계사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제조만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게 애플 등 빅테크기업의 신용을 획득하며 번창하게 된 배경이다.

팹리스의 전형적 기업이 근래 회사가치(시가총액) 1조달러를 기록한 엔비디아다. 엔비디아가 만들어내는 칩은 GPU, 그래픽처리칩이다. PC시대 반도체는 인텔의 CPU였지만 스마트폰과 AI 시대엔 GPU가 대세다. 현재 엔비디아는 세계 AI 반도체의 70%를 공급하는 절대 강자다.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도 대만 출신 젠슨 황(60, 黃仁勳)이다. 그는 아홉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스탠포드대학을 나온 후 친구들과 함께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엔비디아는 처음에 비디오게임용 칩을 주로 설계했지만 이제는 AI칩에 치중하고 있다.

업계 파트너로 서로 이끌어 준 관계

모리스 창과 젠슨 황은 30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업계 파트너가 됐다. TSMC가 도약한 것이 애플의 반도체 생산주문이었다면, 엔비디아의 도약은 젠슨 황의 앞날을 높게 평가하고 반도체를 설계대로 만들어 준 모리스 창이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만침공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제 TSMC에서 은퇴한 모리스 창은 최근 대만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이 대만에 상륙전을 벌일 확률은 매우 낮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반도체 칩은 대만에게도, 중국에게도, 미국에게도 죽고 사는 문제 같다.

김수종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