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30여년 전 미국에서 토요타 '캠리'를 리스해 탄 적이 있다. 연비가 좋고 몇년 동안 후드(엔진덮개)를 열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고장이 적다는 지인의 말에 혹해서였다. 그의 말마따나 기름도 덜 먹고 엔진소음도 없으며 1년에 한두번 오일을 갈기 위해 후드를 열어 볼 정도였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일본 자동차는 미국의 젊은 직장인에게 어필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이후 미국시장을 석권했다. 그 선두에 토요타가 있었다. 20세기 말 기후환경 문제가 대두하자 토요타는 친환경차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앞서나갔다. 결정적인 계기는 1997년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 출시다. 휘발유 엔진과 배터리를 번갈아 사용하며 달릴 수 있는 프리우스의 등장으로 토요타는 '21세기 자동차메이커' 이미지를 구축했다. 2022년 토요타는 1050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자동차메이커다.

그런데 올해 토요타는 불길한 신호를 받았다. 2022년 세계시장에서 전기차 판매가 70% 증가해서 770만대에 이르렀다. 중국 전기차시장이 크게 팽창했고 미국의 테슬라와 중국의 비야디(BYD)와 니오(NIO)가 판매를 주도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중국에서 일본차의 판매는 15%나 감소했다. 미국시장에서도 토요타 점유율이 13.8%로 작년의 15.1%에서 크게 떨어졌다.

토요타 경영진의 가슴을 뜨끔하게 한 것은 전기차 판매량이 하이브리드차를 처음으로 능가한 사실이다. 전기차 판매가 크게 증가했는데도 토요타의 자동차 총판매량 중 전기차의 비중은 1%도 안됐다. 20세기 후반 친환경 자동차 기술발전에 가장 앞장섰던 토요타가 21세기 전기차 시대에 지각했고 그 후유증을 앓기 시작한 모양새다.

하이브리드차 성공신화에 갇혀 실기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자동차 산업의 지각변동을 주도한 것은 미국의 테슬라와 중국의 BYD다. 두 회사 모두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을 제쳐두고 배터리와 전기모터 동력으로 달리는 전기차 생산에 회사의 미래를 걸었다. 특히 중국은 20세기 내연기관차에서 뒤졌지만 21세기 전기차에서 미국을 앞지르겠다는 정책 방향을 정하고 소위 '신에너지차' 개발과 보급에 달려들었다. 미국의 GM, 독일의 폭스바겐, 한국의 현대차 등도 순수 전기차 모델개발에 나서면서 하이브리드차에 몰두했던 토요타는 친환경의 빛을 잃기 시작했다.

토요타 경영진을 놀라게 한 일이 작년과 올해 연달아 일어났다. 작년 미국시장에 출시한 전기차 모델 bZ4X가 볼트 흠결로 리콜되는 사태가 생겼다. 또 올 4월 상하이모터쇼를 본 토요타 임원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전통적인 자동차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바퀴달린 아이폰(스마트폰)'과 같은 중국 전기차 모델 개념 때문이다. 토요타 경영진은 긴장했고 주주들도 전기차개발에 굼뜬 경영진에게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토요타는 왜 전기차의 지각생이 되었을까. 일본 안팎의 자동차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경영진이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의 성공신화에 갇혀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프리우스는 토요타의 친환경 이미지를 강화해주면서 25년에 걸쳐 하이브리드차 중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7년까지 통계를 보면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차 판매가 1000만대를 넘었고 그중 푸리우스가 600여만대였다. 2010년대 테슬라가 돌풍을 일으킬 때도 토요타는 동요하지 않았다. 국가정책으로 전기차를 장려하는 중국에서만 합작형태로 전기차에 투자할 정도였다.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차도 탄소감축에 크게 기여한다는 논리로 전기차 확산 추세에 대응했다. 미국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전기차에 불리하게 로비까지 했다. 하이브리드차 집착이 토요타의 기업문화가 되었다. 창업자 3세인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전기차를 움직이는 전기생산이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으로 갈 수 없으므로 전기차는 결국 탄소로 가는 차"라며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줄일 뜻이 전혀 없음을 강조해왔다.

다만 토요타는 2026년까지 10가지 전기차모델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2년 전 발표했지만 미국 유럽 자동차회사들의 전기차 개발 속도에 비하면 매우 느린 편이다. 테슬라는 올해 200만대 판매 목표를 세웠고 BYD는 토요타 세단보다 값싼 전기차모델을 내놓을 계획이다. 테슬라와 중국 전기차의 약진에 독일 자동차들도 혼란스런 형국이다.

일본 소비자와 정부 태도도 느긋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 소비자와 정부 당국자가 전기차를 바라보는 태도다. 뉴욕타임스는 일본 소비자들이 전기차에 크게 구미당겨 하는 것 같지 않다고 보도했다. 또 일본정부 당국자들도 일본 자동차회사의 더딘 전기차 개발에도 느긋하다는 것이다. 애플 구글 삼성이 노키아를 대체했듯이 테슬라와 BYD가 토요타의 미래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사회에서 토요타의 영향력은 광범하고 깊다고 한다. 그러나 토요타는 국내 소비자의 신뢰만 믿고 존재하기 어려운 글로벌 기업이다. 10년 후 토요타의 변화가 궁금하다.

김수종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