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자녀 정서학대 ‘교사 유죄’ … 대법원에선 “증거능력 부정”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자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특수교사의 재판에서 법원이 부모가 몰래 녹음한 내용을 증거로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최근 대법원이 부모가 아이 몰래 책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녹음한 교사의 발언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한 것과는 다소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전날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A교사에 대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경미한 범죄에 대해 죄는 인정하면서도 일정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기간이 지나면 면제해주는 제도다.

웹툰 작가 주호민이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주 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A씨는 지난 2022년 9월 경기도 용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주씨의 아들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말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에 대한 수사는 주씨가 아들에게 녹음기를 줘 학교에 보낸 뒤 녹음된 내용 등을 근거로 A씨를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이날 쟁점은 몰래 녹음한 내용을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느냐였다.

A씨측은 재판과정에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는 대화’에 해당한다”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통신비밀보호법 14조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같은 법 4조에서는 이를 위반해 취득한 내용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11일 이같은 규정에 따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B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B씨는 아동학대를 의심한 부모가 아이 몰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녹음한 수업내용을 근거로 경찰에 신고해 수사를 받았고 재판에 넘겨졌다.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다’고 말하는 등 16차례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가 적용됐는데 1, 2심은 몰래 녹음한 내용을 증거로 인정해 유죄로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판단하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A씨 변호인은 이같은 대법원 판결을 들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곽 판사는 “피해아동과 모친은 별개의 인격체이며 (녹음된) 대화가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 대화가 명백하다”고 봤다. 다만 녹음행위의 ‘위법성 조각(배제) 사유’를 근거로 통신비밀보호법을 적용하는 대신 형법 20조를 판단근거로 삼아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형법 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곽 판사는 “피해자 모친이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 대화를 녹음한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는 지는 대법원 판례로 나온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상당성, 긴급성, 보충성 등을 요건별로 살펴보아야 한다”며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 모친이 피해자에 대한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녹음한 것이기 때문에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자폐성 장애아동인 자녀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모친 입장에서 신속히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점,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교실에서 소수의 자폐 학생만이 피고인 수업을 들어 녹음 외에는 학대를 확인하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긴급성과 상당성이 있다고 봤다.

녹음파일이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녹음을 금지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에 해당하지만 행위의 위법성을 소멸시키는 충분한 사유가 있어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곽 판사는 “이 수업은 의무교육에 의한 공교육이라 녹음돼 침해되는 사생활보다 보호할 수 있는 이익이 더 커 보인다”며 “통신비밀보호법에도 불구하고 (녹음파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