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자동차노조(UAW)가 지난달 24일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한 지 며칠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노조지도자 숀 페인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지원이 미국 자동차산업을 파괴하고 일자리를 해외로 보낼 것이라고 주장하며 “페인이 자동차산업을 중국의 거대하고 강력한 손에 팔아넘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노동자 표심을 놓고 구애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UAW가 최종적으로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자 페인 위원장을 비난한 것이다. UAW는 2020년 대선에서도 바이든 후보를 지지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노심(勞心) 구애경쟁은 노동자표가 중서부 주요 경합주이자 이른바 러스트벨트에 위치한 위스콘신주와 미시간주의 승부를 가를 중요변수로 꼽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에서 미시간주에서는 15만4000여표, 위스콘신주에서 2만여표 정도 차이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겼다. 두 지역 모두 노조 관련 유권자들이 적지 않아 노조원 및 가족들의 투표가 승부에 결정적일 수 있다.
지난해 9월 바이든 대통령은 미시간주 자동차노동자들의 파업현장을 방문했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이례적인 지지를 표명하며 피켓대열에 합류한 최초의 현직대통령이 됐다. 파업이 성공으로 끝났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일리노이주 노동자들을 축하하는 자리에 나타났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시간주에서 피켓시위에 나서기로 한 결정은 자동차업계 경영진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UAW 파업현장을 방문한 것과 관련, “여러분을 지지하는 것이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쉬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UAW, 빅3 자동차회사 상대로 파업 성공
UAW를 이끄는 강력한 지도자 숀 페인은 UAW 출범 88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3대 자동차회사인 포드 GM 크라이슬러에서 동시파업을 주도했다. 금세기 최장기간의 미국자동차산업 파업은 UAW가 빅3 회사 모두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면서 끝났다. 이러한 파업의 성공은 숀 페인에게 CNN비즈니스의 ‘올해의 노동리더’라는 타이틀을 안겨줬다. 매년 올해의 CEO를 선정하던 CNN이 2023년 처음으로 올해의 노동자 리더를 선정한 것이다.
2020년 UAW 집행부의 오랜 부패관행이 수사대상에 오르면서 전임위원장 2명 등 10여명의 전 집행부가 부패 등의 혐의로 감옥에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로 위원장 선거방식이 바뀌면서 개혁파가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위원장 선출방식을 조합원 총투표, 즉 직선제로 바꾸면서 현장 조합원의 지지를 받는 개혁파 소속 숀 페인이 당선됐다. 페인 후보의 주요 공약은 노동조합 내 부패 근절, 양보교섭 중단, 노동자 내부의 차별철폐였다.
크라이슬러 공장 전기공 출신인 그는 1994년 UAW 평조합원으로 가입했다. 뼛속까지 노동자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그의 할아버지도 UAW 창립회원이었다고 한다. 숀 페인은 지금도 할아버지의 급여명세표 한 장을 지갑에 지니고 다닌다. ‘나는 노동귀족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의 한사람’이라는 걸 잊지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라고 한다.
6주간의 파업 끝에 UAW는 미국 3대 자동차회사와 노동자들에게 수십년 만에 가장 큰폭의 임금인상을 안겨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 승리는 미국 노동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또 다른 운동인 사회복음의 부활을 의미했다.
사회복음 부활이 미국 사회 바꾸고 있어
빅3 자동차 제조업체를 상대로 전례없는 파업을 이끌기 불과 며칠 전 페인은 자동차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자동차제조업체 CEO들의 저항을 언급하며 자신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태복음 17장 20~21절을 포함한 성경구절을 인용했는데, 그 구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겨자씨만 한 믿음을 가지면 너희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리라”고 말한다. 숀 페인은 UAW 조직원들에게 자동차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파업을 조직하고 대담한 요구를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의 행위”라고 정의했다.
“위대한 신앙의 행위는 냉철한 계산에서 나오는 경우가 드뭅니다.” 할머니의 성경을 자주 가지고 다닌다는 페인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모세가 홍해에서 지팡이를 들게 한 것은 논리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율법을 버리고 은혜를 받아들인 것은 상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작은방에서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기도한 위원회는 확신에 찬 위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절망에 빠진 신자들의 무리였습니다.”
페인의 설교는 주목할 만한데,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파업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자세하게 인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는 그랬다. 성경과 파업을 혼합하기로 한 페인의 결정은 사회복음의 전통을 잇는 것이다.
사회복음은 19세기 후반 미국이 급속히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불평등이 심각해지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한 기독교운동이다. 사회복음은 종교를 경제적 정치적 개혁을 위한 무기로 바꾸어놓았다. 빈민가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지옥에서 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메시지였다. 사회복음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제 운동, 기업 독점 해체, 아동노동 철폐 등을 지지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언론에서 주목하는 종교 관련한 주제는 사실상 인종주의 근본주의 성향의 백인기독교민족주의다. 트럼프가 백인 민족주의와 기독교 민족주의를 결합해 바이블벨트를 자극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미국의 지식인들과 개혁적 종교지도자들은 미국의 정치를 형성하고 있는 또다른 유형의 기독교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복음운동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 부활한 형태의 사회복음이 미국 정치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복음운동 지지자들은 많은 미국인들의 관점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이제 더 많은 미국인들이 빅테크독점이 번영에 점점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믿고, 더 많은 사람들이 연방최저임금의 극적인 인상을 지지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스스로를 도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믿는다.
페인은 이러한 사고의 변화를 구체화했다. 그는 UAW 파업기간 내내 사회복음에 깊이 손을 뻗었고, 한 평론가가 지적한 것처럼 “놀라운 기독교적 수사학”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쇠퇴했던 노조가 다시 지지받는 이유
아마도 사회적 복음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곳은 미국의 빈곤을 바라보는 아이비리그 교수의 연구일 것이다. 매튜 데스몬드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퇴거: 미국 도시의 빈곤과 이익’의 저자다. 데스몬드는 자신의 책에서 빈곤은 개인의 도덕적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일부 시민을 가난하게 유지하는 것이 다수의 이익에 기여하는 시스템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현재 미국의 분위기는 사회복음 메시지를 전하기에 무르익은 것처럼 보인다. 수십년 동안 쇠퇴했던 주요 노조가 힘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노조에 대한 지지는 1965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불평등 또한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지난해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29세 사이의 미국인 대다수가 자본주의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인의 믿음은 기업의 산을 움직였다. 하지만 페인은 아직도 많은 것이 남아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선거는 단순히 가장 친한 친구나 기분을 좋게 해주는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다”라고 페인은 말한다.“선거는 권력에 관한 것이다.”
서민원 CA 변호사·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