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체코의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2009년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원전에 이어 15년만의 쾌거다. 총 예상사업비는 약 24조원으로 바라카원전(약 20조원)을 뛰어넘는 사상 최대 규모다. 특히 원전 본산지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발주사와 세부협상을 거쳐 내년 3월까지 최종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체코정부는 테멜린지역에 원전 2기를 새로 건설할 경우 한수원에 우선협상권을 주기로 해 추가 수주 전망도 밝다.
우리나라는 이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원전 선진국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국내에서 풀어야 할 선결과제가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체코 원전 수주를 계기로) 원전 생태계복원에 더욱 분발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원전 생태계란 신규 원전 건설, 계속운전 시행 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원전에서 사용하고 남은 부산물에 대한 처리시스템까지 갖춰야 완결된다.
그동안 정치권은 친원전이니 탈원전이니 하며 원전을 정치이슈화하고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도 정쟁의 도구로 삼아왔다. 원전을 멈추지 않고 계속 가동하려면 사용후핵연료 처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운영으로 인한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978년 첫 원전 가동 이후 사용후핵연료 1만9100톤이 임시저장시설에 쌓여있다. 2030년 한빛원전, 2031년 한울원전, 2032년 고리원전 순으로 임시처분장의 포화가 예상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며 원자력혜택을 누린 현 세대의 의무다. 친원전·탈원전과 무관하며 원전운영국이 해결해야 할 필수과제이기도 하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건식저장시설 설치에 최소 7년(설계 2년, 인허가 2.5년, 건설 2.5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더이상 늦출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건립을 위해서는 법제화가 필요하다. 제21대 국회가 방기하면서 고준위방폐물법안이 자동 폐기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행히 제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4명의 의원이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건립, 부지선정 절차 등이 담겨있다.
윤석열정부 임기가 3년이 채 안남았다. 통상 임기만료 1년 전쯤에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웠던 점을 고려하면 지금 당장 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원전을 운영하는 주요국들은 우리보다 앞서 방폐물 처분시설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원전 상위 10개국 중 부지선정조차 착수하지 못한 국가는 한국과 인도뿐이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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