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수주 호황인데 임금은 몇백원 인상” … 상생협력만으론 한계, 조선산업기본법으로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2022년 7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이 조선업 불황기에 삭감됐던 임금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51일간 파업을 벌이면서 외쳤던 절규다.
정부는 2022년 10월 ‘조선업 격차해소 및 구조개선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11월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체’(상생협의체)를 발족했다. 상생협의체는 지난해 2월 27일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상생협약에는 원·하청 상생을 위한 자발적 협력에 기초해 원청은 적정 기성금을 지급하고 하청은 임금인상률을 높임으로써 원·하청 간 보상수준의 격차를 최소화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위한 숙련중심 임금체계 개편과 정부 지원 △에스크로 결제제도 적극 활용을 통해 하청노동자 임금체불 예방 △상시적 업무에 재하도급(물량팀) 사용 최소화 및 재하도급을 프로젝트 협력사로 전환 △하청 보험료 성실납부를 전제로 원청의 하청 보험료 납부 지원방안 모색 및 정부의 연체금 면제 등 27개의 실천과제를 합의했다.
조선업 수주 호황기를 맞았지만 하청노동자들은 다시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를 외치고 있다. 저임금과 임금체불, 폐업, 산업재해, 다단계 하도급 등의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공성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와 더불어민주당 김주영·김태선·박해철·이용우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소통관에서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파업 타결 2년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2년 전 한화오션 하청업체에서 취부사(도면대로 가용접 작업자)로 파업에 참여했던 이학수(46)씨는 파업투쟁 뒤 시급 1만620원으로 350원 올랐다. 지난해에는 650원 올라 시급 1만1270원, 그리고 올해 시급 1만1730원으로 460원 오르는데 그쳤다.
16년 경력의 이씨는 “잔업 특근을 안하면 월급 270만원이고 최대한도(주 52시간) 잔업 특근을 하더라도 월급은 358만원”이라며 “세금과 4대 보험료 약 40만원을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월 230만~32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배우자와 대학생 아들의 생계를 꾸려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이씨는 “조선업이 호황이고 한화오션은 수백억원 흑자를 내도 물량팀 임금은 상대적으로 오르는 데 비해 사내하청업체 상용직(본공)은 1년에 고작 몇백원 오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조선업 수주 호황기를 맞고 있다. 한화오션만 보더라도 7월 1일 현재 LNG 운반선 16척,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7척, 암모니아 연료전지 추진 암모니아 운반선(VLAC) 2척, 초대형 가스 운반선(VLGC) 1척, 해양 설비 1기 등 총 53억3000만달러를 수주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수주 금액 35억2000만달러를 뛰어넘는 금액이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52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영업손실 628억원)와 비교해 흑자로 전환했다.
이씨는 요구는 2년 전과 같다. 본공의 삭감된 임금 대폭 인상과 2016년 상여금 550% 원상회복이다.
●저임금 본공, 조선업 떠나거나 물량팀 이동 = 우리나라 조선업은 다단계 하도급에 의존한 생산구조다. 원청 소속 정규직 노동자, 원청으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1차 사내하청업체 본공, 1차 사내하청업체로부터 재하도급 받는 물량팀으로 이뤄진다.
물량팀은 공정단위로 일감을 받고 공정이 끝나면 일자리를 잃지만 임금은 높다. 임금과 상여금 연차휴가 퇴직금을 모두 합친 ‘직시급제’로 받는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사업소득세 3.3%를 공제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이씨가 공개한 한화오션 A하청업체(조립업체)의 인력 구성을 보면 사무관리직 10명, 본공 37명, 직시급제 8명, 촉탁직 6명, 외국인노동자 28명, 재하도급 물량팀 40명이다. 전체 129명 가운데 본공은 37명에 불과하다.
26일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생협의체에서 다단계 하도급을 최소화하기로 약속했으나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없었다”면서 “오히려 처우가 낮은 본공이 일당이 높은 물량팀으로 이전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노동자가 조선업 전체 인력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원청의 일방적으로 기성금 결정 개선 안돼 = 지난해 말부터 임금체불까지 발생하고 있다. 조선하청지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2월 한화오션에서 2억원, 삼성중공업에서 70억원대 하청노동자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6월에는 한화오션에서 15억원이 발생했다.
또 다른 하청노동자 B씨는 “다수의 한화오션 하청업체는 은행에서 대출받거나 다음달 기성금을 미리 받는 형태로 한화오션에서 돈을 빌리지 않으면 하청 노동자 임금을 체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량팀 임금체불 등은 ‘기성금 후려치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원청이 하청업체 기성금 결정의 3요소인 단가 시수 능률을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B씨는 “공정차질 등으로 150명을 투입한 공사에 100명분 기성금을 받으면 50명분 임금은 자연히 체불된다”며 “한화오션 경영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에선 에스크로 결제제도(노무비 직접지급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당초 지급된 금액이 투입된 노동자 임금에 미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급격한 외국인노동자의 확대는 안전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발판작업 15년 경력의 C(51)씨가 소속된 한화오션 하청업체의 현장노동자 340명 가운데 외국인노동자는 130명이다. 수십개국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C씨는 “어려운 문제가 의사소통으로 그만큼 손발을 맞춰 일하기 힘들고 일도 더딜 수밖에 없다”면서 “더 중요한 것은 안전문제”라고 말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6월 14일 현재 조선업에서는 깔림 화재·폭발 추락 등으로 10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해 14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노조법 2·3조 개정해 원청과 단체교섭 보장”=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은 “이름뿐인 상생협약으로 조선소 현장은 손톱만큼도 나아지지 않았다”면서 “생색내기 협약이 아니라 하청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주고 원청과 단체교섭을 하도록 노조법 2·3조를 개정하고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 말라”고 촉구했다.
정흥준 교수는 “상생협약은 자율협약이다 보니 기성금 기준이나 물량팀 최소화, 숙련에 대한 보상,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체계적인 인력관리 등 구조적인 사안들은 풀기 어렵다”며 “상생협의체에 노조참여 보장하고 조선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보장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산업지원 방안, 고용구조, 인력활용 등을 담은 조선산업기본법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매월 협력사에 수행한 작업에 상응하는 기성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경영수지는 협력사별로 관리능력 작업능률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 “한화오션은 협력사 정규직 확대 및 유지를 위해 정부에서 추진 중인 ‘조선업 재직자 희망 공제사업’ 등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5월 한화오션 출범 이후 안전보건 분야에 전년 대비 600여억원 증액된 3212억원을 투자했으며 올해도 약 300억원 추가 투자하고 특히 스마트 안전분야 투자에도 550억원을 편성했다”며 “한화오션은 안전·보건·환경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사업장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정연근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