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한 대표 회동 후에도 친윤-친한 동상이몽

“포용하라” “알아서 하라” 대통령 발언 다르게 해석

“사퇴하라는 압박은 뺄셈 정치로 보일 가능성 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간의 1시간 반 회동이 알려진 후 잠재워질 듯하던 당내 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친윤석열계·친한동훈계 의원들이 서로 다르게 해석하며 오히려 갈등이 더 깊어지는 조짐도 보인다. 특히 회동 다음 날인 서범수 사무총장이 임명직 당직자들의 일괄 사퇴를 요구했지만 ‘타깃’으로 지목된 정점식 정책위의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왼쪽)가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회동이 알려진 후 첫 회의인 1일 최고위원회의는 시종일관 싸늘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전날 서범수 사무총장이 임명직 당직자들의 일괄 사퇴 등을 요구했지만 정점식 정책위의장이 별다른 답을 하지 않는 등 찜찜함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정 의장은 이날 회의에 참석은 했지만 “발언은하지 않겠다”며 마이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등 최근 거취 관련 논란이 벌어지는 데 대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전날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회동에 대해 친윤계와 친한계는 서로 다른 해석을 이어가며 기싸움을 벌였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만나 “정치는 결국 자기 사람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폭넓게 포용해 한 대표 사람으로 만들라” “(당직 인선은) 대표가 알아서 해달라”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발언을 두고 친한계 의원은 “당 대표가 알아서 하라는 발언을 보면 한 대표가 어떻게 하든지 믿겠다는 뜻 아니냐”면서 “당 대표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1시간 반 이상 회동한 사실을 놓고도 “그동안 두 사람 관계가 불편하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증명된 것 아니겠느냐”면서 “이후에도 이른바 기존 주류 의원들이 한 대표의 리더십에 딴지를 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윤계는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친윤계 의원은 “대통령이 포용하라는 말을 왜 하셨겠느냐”면서 “정 정책위의장을 콕 집어서 말한 건 아니더라도 모두를 두루두루 안고 가라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오히려 한 대표에 대한 반격에도 나서는 모습이다. 친윤으로 분류되는 조정훈 의원은 1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정책위의장 관련해 “한 대표가 ‘뺄셈 정치가 아니라 덧셈 정치를 하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 했다”며 “사퇴하라는 압박 뉴스는 뺄셈 정치로 보일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헌·당규상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와 협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독단적으로 해임할 수 없다”며 “저 같으면 정점식 정책위의장에게 친한과 친윤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대표는 대통령과 회동 후 당직 인선에 속도를 올리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서범수 사무총장은 지난 달 31일 당사에서 한 대표를 면담한 후 ‘당직자 일괄 사퇴’를 요구한 것이 방증이다. 서 사무총장은 한 대표와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당 대표가 새로 왔으니 새로운 변화를 위해 당 대표가 임면권을 가진 당직자에 대해서는 일괄 사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1년 임기’를 앞세우며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던 정 정책위의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서 사무총장은 ‘일괄 사퇴를 한 대표와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논의했다”고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 의장은 거취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거취 관련 고민을 해봤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고민할 것이 있느냐”고 반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선 이 문제가 길어질수록 한 대표 리더십에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립적 성향의 한 초선 의원은 “가만히 있는 정 의장도 답답하지만 빠르게 결단하지 않는 한 대표도 답답하다”면서 “여러 가지 정치적 고려를 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긴 하지만 늘어질수록 한 대표의 리더십에 의문을 갖는 의원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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