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이냐, 실용성이냐 놓고 논쟁 가열 … 당론 결정과정 주목

시행론 “문재인정부서 금융선진화방안으로 추진, 세체계 합리화”

유예론 “국민 목소리 듣는 게 정의 … 괴담 치부 국민의힘 같아”

더불어민주당이 내년부터 시행키로 돼 있는 금융투자소득세를 놓고 기로에 섰다.

그동안 민주당이 주장하고 유지해 왔던 ‘조세정의’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표심’을 겨냥해 주가하락을 우려한 일부 개미투자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냐를 놓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민주당은 조만간 당론을 정할 예정이다. 민주당의 정체성과 이재명 대표의 실용성이 맞붙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금투세 시행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24일 오전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정책디베이트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회원들이 금투세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민주당 정책위는 24일 금융투자소득세 시행과 유예를 놓고 제1회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를 연 뒤 “유예론의 핵심은 금투세가 시행되면 주식시장에 주가 하락 등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므로 상법 개정 등 주식시장 밸류업 조치를 선행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시행론의 요지는 금투세가 시행되더라도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금투세를 시행하되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도 동시에 추진하자는 것으로 집약된다”고 설명했다. 시행론자와 유예론자의 차이는 ‘금투세 시행 이후의 효과’라는 ‘경험해보지 않은 결과’를 놓고 있다. 결국 이는 ‘시각 차이’이면서 민주당이 지향하는 정체성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는 왜 2020년에 시행하려고 했나 = 유예론자와 시행론자가 붙은 이번 토론은 ‘조세정의’라는 민주당의 오랜 정체성을 고집할 것이냐, 1400만표를 행사할 수 있는 주식투자자들의 반발 가능성을 고려해 실용적으로 ‘유예’할 것이냐로 갈렸다. 조세정의와 표심 중 어느 것을 앞에 둘 것이냐는 질문을 안게 된 것이다. 민주당 정체성을 유지할 것이냐 바꿀 것이냐를 결정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의 원칙에 따라 금융투자세 도입을 주장해 왔고 문재인정부 들어서야 도입할 수 있었다.

2022년 유예 당시 민주당 정책위 의장이었던 김성환 의원은 시행론자로 나서 “2020년 금융투자세를 도입할 때 당에서 금융시장 선진화특위를 만들었고 당시 문재인정부에서 금융투자세 도입 등 선진화를 하면 부동산으로 쏠렸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많이 넘어오게 될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김영환 의원은 “현재의 조세체계가 잘못됐고 여야 합의로 (2020년에) 통과된 법안”이라며 “증세가 아니라 리뉴얼하는 합리적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게 해 주는 세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금융투자세를 폐지하는 데에는 ‘유예팀’에서도 반대했다. 민주당 정책위에서는 “금투세제도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조세정의’와 ‘민주당 정체성’을 앞세운 이들은 ‘대규모 투자자들의 반발 가능성’이라는 큰 벽에 부딪혔다.

◆“상법 통과→신뢰 회복→MSCI지수 편입→주가상승 이후 금투세 도입” = 유예론자들은 투자자 보호조치 등 선진화 방안을 시행하고 이에 따라 MSCI 선진국 지수에 포함돼 결국 주가가 급등하게 되면 그때 도입을 해도 늦지 않다고 보고 있다.

유예론을 강하게 공개 천명해 왔던 이소영 의원은 “금투세를 시행하면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과도한 공포라고 하는 것은 주로 국민의힘에서 취하는 태도”라며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귀를 여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는 “소득에 과세하면 기대수익에 영향을 미치고 자금 유출 가능성이 크다는 게 상식적”이라며 “이를 괴담이나 공포로 매도해선 안 된다”고 했다. 김현정 의원은 개인투자자들의 ‘조세 저항’을 우려했다. 그는 “금투세 도입은 개인투자자들의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고 소액투주자들이 반대하는 것을 강행하면 시장은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며 “증시체질을 갖추고 MSCI에 들어간 후 조세저항 없이 금투세 시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상법 개정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주가를 부양한 후에 금융투자소득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이날 토론회 후반에 ‘금투세 유예가 민주당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을까’라는 시청자의 질문이 나왔다. 이 의원은 “물론 조세정의 중요하다”면서도 “그런데 상황을 불문하고 덮어놓고 과세하는 것이 (민주당의) 정체성이 돼선 안된다”고 했다. “개미투자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정체성에 중요하다”고 했다.

◆확산되는 유예론 = 처음엔 목소리가 작았던 유예론 입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공개적으로 유예론에 손을 든 김민석, 이언주 최고위원과 함께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 입장에서 박선원 의원, 유동수 의원이 유예론에 힘을 실어줬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토론회 시작 전에 “금투세는 공정한 과세를 실현하고 대다수 개인투자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도입하기로 했다”면서 “국민의힘이 말하는 것처럼 시행되지도 않은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때문에 주식시장이 폭망했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괴담이자 선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최근 주식시장이 불황이다 보니 내년 시행을 앞두고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토론회 마무리 발언에서는 “(민주당이) 합리적인 결과를 낸다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끌 수 있을까”라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과연 금투세 도입과 관련돼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집단 지성을 어떻게 발휘하고 있는지 그것을 바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도부뿐만 아니라 의원들이 국민들의 생각을 좀더 세밀하게 열린 마음으로 우리 당론을 정하는 데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당론 결정과정에서 충돌하는 이견을 어떻게 공지할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이재명 대표의 측근인 정성호 의원은 ‘금투세 폐지’를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토론에서 이견이 없는 자본시장선진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내놓기로 했다. 정책위는 “금투세 디베이트 결과 필요성과 시급성이 모두에게 인정된 주식시장 밸류업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며 “기왕에 발표한 ‘코리아 부스트업 5대 프로젝트’를 법률안으로 성안하여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코리아 부스트업 5대 프로젝트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 △독립이사 의무화 △감사의 분리선출 △대기업 집중투표제 활성화 △전자주총 의무화 및 권고적 주주제안 허용 등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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