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전력생태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는 지역별 전력거래가격제 도입이다. 지역별 전력가격제가 도입되면 전국적으로 단일하게 결정돼 왔던 도매전력가격은 지역별로 달라지게 된다. 전력공급이 넘치는 지역의 도매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전력공급이 모자라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이 제도는 지역별 도매전력가격을 통해 입지 신호를 줌으로써 송전망 부족으로 전력공급이 모자란 수도권에 발전소가 더 많이 건설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도적 결함 외에 법적 무결성 측면에서도 부족

지역별 가격제는 미국 유럽 등 전력산업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고 전력경제학 이론으로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일견 괜찮은 제도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력생태계에서 이 제도 도입의 당위성과 설계방향은 크게 의심받고 있다. 정부는 발전소와 마찬가지로 지역별 소매전기요금제를 통해 전력수요에 대해서도 입지 신호를 주겠다는 방침이지만 이것이 정치적으로 실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자칫 송전망 확충에 실패한 한전에게 송전제약에 대한 면죄부뿐만 아니라 인센티브마저 줄 수 있다는 도덕적 해이 문제도 강하게 지적된다.

불가피하게 지방에 입지할 수밖에 없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경제적 타당성을 악화시킴으로써 국가 탄소중립 목표 실현에도 악영향을 줄 우려도 있다. 수도권-비수도권이라는 지역 구분이 전국 송전제약에 대한 면밀한 검토 하에 이루어진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이처럼 지역별 가격제가 현단계에서 어설프게 시행될 경우 전력시장, 그리고 전력생태계의 작동방식을 왜곡하고 나아가 국가 에너지안보에도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이러한 제도적 결함 외에도 지역별 가격제는 법적 무결성 측면에서도 상당히 부족하다. ‘전기사업법’ 제33조 제1항은 도매전력가격이 시간대별 전력수급상황에 따라 결정되도록 했고, 같은 법 제45조 제2항은 전력계통 운영 목적으로 전력시장에서 결정된 급전순위와 다르게 급전지시(재급전지시)를 할 경우 객관적으로 공정한 별도 기준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전기사업법’은 ‘동일 전력계통, 동일 전력거래가격’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지역별 가격제는 이를 정면으로 위반한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45조는 전기판매사업자인 한전 전기요금에 대한 규정일 뿐이므로 지역별 가격제의 법적 근거가 아니다. 오히려 지역별 소매요금제 도입을 위해 법적 근거까지 마련한 마당에 지역별 도매가격제 도입을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필요없다는 것인지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지역별 가격제 시행에 필요한 법률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전력거래소의 시장규칙을 통해 지역별 가격제를 도입하겠다는 시도는 단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일 뿐 아니라,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초래한다. 더욱이 특정 발전사업자에게만 정산조정계수 차액계약 등 방식으로 지역별 가격제 회피수단을 허용한다면 가격차별에 따른 공정거래법 위반 문제를 야기한다.

법적 근거 마련하고 참여자 공감 얻는 일 선행돼야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점은 지역별 가격제가 소급적용될 경우 기존 지방 발전사업자들의 신뢰를 배반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와 한전의 송전망 확충 계획을 믿고 막대한 투자를 했다. 그런데 송전망 확충 실패로 심각한 송전제약이 발생하자 발전사들이 입지를 잘못 선택한 도덕적 해이를 저질렀으니 가격 불이익이라는 페널티를 내라고 하는 것은 헌법 상 신뢰보호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

전력시장 제도 변화가 단기적 시각에서 결정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법제도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투자자들의 투자기피로 전력생태계는 심각한 자본결핍을 겪게 될 것이다. 지역별 가격제가 전력시장 선진화라는 순수한 대의에 따라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면 입법을 통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다양한 전력생태계 참여자들로부터 공감을 얻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