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후 산재사망과 비슷하게 자살 사망 발생 … “자살통계 및 정확한 심리부검 통한 실태파악 시급”

통계청 ‘2023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우리나라 상주 외국인은 143만명으로 이 가운데 취업자는 92만3000명에 달한다. 이들의 78.9%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등의 비전문 일자리에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이 E-9(비전문취업) 비자, H-2(해외동포) 비자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다. 올해로 시행 20년째인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불허(임금체불, 휴·폐업, 부당한 노동행위 등 이주노동자의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함으로써 강제노동이란 지적을 받는다. 사업장 이동 신청 및 구직활동 기간 초과 등 과도한 행정적 절차로 이주노동자는 체류자격을 상실하거나 일할 사업장마저 잃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위험하고 열악한 소규모 사업장의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서툰 한국어와 문화차이 등으로 산업재해 위험에 더욱 쉽게 노출된다. 지난해 산재보험 유족급여 지급이 승인된 사고사망자 812명 가운데 이주노동자 사고사망자는 86명으로 10.5%를 차지했다. 전체 근로자 대비 사망사고 발생 확률은 약 1.4배 높은 수준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외로움과 고립, 제도적 차별로 인한 정신적 고통 속에 자살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사)한국이주민건강협회 위프렌즈(회장 김성수 성공회대 대주교)는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노동자 생명 살리는 자살예방 국제포럼’(국제포럼)을 열었다.

위프렌즈(옛 희망의친구들)는 1999년 설립해 이주민 건강권 증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2020년부터 이주노동자 자살예방사업으로 이주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정신건강 상담활동가 역량강화교육, 이주노동자 생명지킴이 온라인 교육 등을 진행한다.

8월 1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전국의 이주인권단체 공동으로 고용허가제 도입 20주년을 맞아 후퇴하는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해 비판하며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위프렌즈 제공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E-9) 사망 및 자살 현황’(2020~2024년 6월)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인 2020~2021년 이주노동자 자살은 각각 15명, 8명 등 23명으로 크게 늘었다가 이후 매년 3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신종감염병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적 고립과 외국인 혐오, 재난지원 배제 등 다양한 차별을 겪으며 정신건강 위기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이후 산업재해 사망(36명)과 비슷하게 자살 사망(32명)이 발생했다. 국적별 자살 사망은 네팔 11명, 스리랑카 7명, 태국 4명 순이었다. 국내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전체 자살 사망 통계가 없어 다른 체류자격과 미등록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드러나지 않은 자살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애란 위프렌즈 사무처장은 국제포럼에서 ‘이주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프렌즈는 2020년 2022년 2024년 3차례 걸쳐 국내 90일 이상 장기체류자로 고용허가제와 특례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네팔 미얀마 태국 베트남 중국동포 스리랑카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414명에 대한 설문조사와 72명 심층인터뷰를 실시했다.

2020년에는 국내 이주노동자 중 자살사례가 가장 많은 네팔, 자살시도자가 늘고 있는 미얀마, 같은 민족이라는 정체성과 출생·성장배경이 다른 이질성이 동시에 있는 중국교포를 선정했다. 2022년에는 한국 체류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은 태국과 베트남을, 올해에는 자살사례가 많고 농축산업 노동자가 많은 스리랑카와 캄보디아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다.

◆우울증, 농림축산업 종사자, 제조업보다 4배 높아 = 414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증도 이상 우울일 위험이 남성 응답자에 비해 여성이 1.94배 높았다. 태국 국적 응답자에 비해 네팔 이주노동자가 3.86배, 캄보디아 5.64배, , 베트남 7.67배 높았다. 제조업에 비해 농림축산업에 종사자가 4배 정도 높았다.

이 사무처장은 “농림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저임금 장시간 근로, 열악한 주거환경, 고립 등으로 취약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올해 실시한 스리랑카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자살사고를 보고할 위험이 남성보다 여성이 3.33배 높았다. 스리랑카에 비해 캄보디아 응답자가 5.96배 높았다. 제조업 종사자보다 농림축산업 종사자가 6.49배, 근무시간 1시간 증가할 때 3% 높았다.

이 사무처장은 “이주노동자 자살통계 및 심리부검을 통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함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사회보장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무처장은 △본국 가족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출국 전 자살예방 교육 △취약성이 높은 국가 이주노동자 특성을 고려한 정신건강증진 서비스 △농축산업 어업 등 취약한 업종 맞춤형 프로그램 제공 △여성 이주노동자 맞춤형 정신건강서비스 등을 제언했다.

위프렌즈는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노동자 생명 살리는 자살예방 국제포럼’을 열었다. 사진 위프렌즈 제공

프락틴 옴 캄보디아 EMDR협회 소장은 ‘캄보디아인 정신건강 특성’ 발제를 통해 “캄보디아는 킬링필드로 인한 역사적 트라우마가 다음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다”면서 “캄보디아에는 심리상담사가 100명도 되지 않고 더욱이 아동담당이나 가족전문 상담사도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를 위한 정신건강 상담 준전문가나 전문가 양성할 때 캄보디아와 협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병은 수원시자살예방신터장은 “‘한국인도 힘든데 외국인까지’라는 낮은 인식 등을 해소해야 한다”며 “구체적 사례를 통한 자살예방 교육, 정신건강 지원과 변화하는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예측하며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국제포럼 좌장을 맡은 김미선 위프렌즈 상임이사는 “이주노동자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한국에 오지만 외로움과 고립, 제도적 차별로 인한 정신적 고통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인구절벽 지방소멸에 돌입한 한국 사회에서 미래의 지속가능성은 이주민과의 조화로운 공생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자살예방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실질적인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적극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자원과 정보를 나누고 네트워킹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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