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원 투자해 시작, 11년 후 월 수익 140여만원

"최저임금 인상돼 직원·식당 줄여야 운영 가능"

"150평 식당을 하는 주인이 기초연금을 받았다면 그걸 누가 믿겠습니다. 이게 자영업자의 현실이자 비극입니다."

황태근 사장이 11년간의 자영업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황 사장 뒤로 맛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명인사의 방문기념 글이 가득하다. 사진 김형수 기자

서울시 평창동에서 11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황태근(65세)씨는 올 8월부터 기초연금 20만원을 받고 있다. 황씨 자신도 기초연금수급자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이다. 세무서에서 정리한 월수입 자료를 제출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기초연금수급자로 선정됐다.

"내가 기초연금을 받았다고 하면 농담으로 치부하거나, 대부분 수입을 속였다고 생각할 겁니다. 세무사가 월 수익을 계산하더니 140여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마누라가 주방 일을 하는데도 둘이서 한달간 번 돈이 최저임금도 안되는 거예요."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으며 황씨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황씨가 운영하는 '이천영양돌솥밥'은 서울시 부촌 중 하나인 평창동에서 맛집으로 알려졌다. 150여평 크기의 넓은 가게는 동네 주민보다 외부 손님이 더 많이 찾는다. 식당 벽에는 손님들이 맛과 분위기를 호평한 글들로 가득하다. 시장 연예인 등 유명 인사의 친필 사인도 있다.

누가 봐도 돈 잘 버는 식당 사장인 황씨가 기초연금을 받다니,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지난달 20일 오후 4시경 황씨 식당 결제단말기에 찍인 매출. 사진 김형수 기자

경기침체에 임금·자재 가격 인상 = 황씨는 11년전 현재 자리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건물 지하 150평 대부분은 식당이고, 한 곁에는 호프집과 피자가게도 함께 열었다. 많이는 아니어도 돈을 벌어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였기에 꿈은 소박하지만 절절했다.

중학교 졸업 후 가방공장에서 미싱을 배웠다. 실력이 쌓이자 30대에는 작게나마 직접 공장을 운영했다. 좀더 나은 직업을 갖고 생활하고 싶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눈에 띈 게 식당이다. 그동안 모아 놓은 5억원을 투자했다. 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매일 매일 현금이 들어오는 식당이 공장보다 더 좋아 보여서다.

초기에는 주변에 식당이 별로 없어 빨리 자리 잡았다. 직원 4명과 함께 주말에도 일했다. 1년 중 쉬는 때는 추석과 설 명절뿐이었다. 맛이 있었던지 점심 저녁으로 손님이 꾸준했다. 인근 지역과 대학에서도 예약이 이어졌다. 몸은 힘들었지만 일할 맛이 났다.

이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주변에 식당이 급격히 늘고 주5일 근무제가 전면 확대된 2010년경부터 수익이 줄기 시작했다. 주말 손님들이 급격히 줄은 게 이유였다.

"여기는 거주지역이라 주말 손님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점심까지는 식당이 텅 비었죠. 일요일 저녁이 돼서야 3~4팀 정도만 오더라구요."

이후로 식당 벌이는 좋아지지 않았다. 경기침체에 인건비와 원부자재값 상승으로 식당 수익구조는 나빠졌다. 하지만 판매하는 식단 가격을 올릴 수가 없었다.

실제 11년전 4만원이던 직원 일당은 현재 8만원~8만5000원이다. 내년부터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10만원가량 줘야 한다. 11년전 1근에 7000원하던 돼지고기값도 현재 1만6000원~1만8000원이다. 반면 보쌈은 3만5000원으로 10년전과 동일하다. 돌솥밥 가격은 1만원에서 지난해 1만2000원으로 10년만에 처음으로 올렸다.

예전에 100% 인정받던 농수산물에 대한 의제매입세액 공제율도 현재 50%로 줄었다. 황씨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황씨 식당의 일일 매출은 작년보다 크게 줄었다. 요즘엔 식당 결제단말기(POS)에 겨우 50~60만원이 찍힌다. 결국 식당은 적자로 돌아섰다.

실제 식당 월 수입은 평균 2200만원 정도다. 여기에 직원 4명 인건비 700만원, 집세 관리비 전기요금 등 1000만원, 식자재 600만원 가량을 빼면 100만원 적자다.

"벌이가 줄어든 것보다 수익이 없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올해는 아예 적자예요. 11년 장사하는 동안 올해가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황씨는 무차입 경영 덕에 어려움을 버텼다. 자녀들이 모두 결혼해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점도 황씨에게는 다행이었다.

적자인데도 집주인 월세 인상 요구 = 하지만 황씨도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은 황씨를 마지막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황씨의 사정은 개의치 않고 월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도 힘겹다.

"노동시간 맞추려면 직원을 오전과 오후 별도로 채용해야 합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직원을 줄여야 합니다. 따라서 손님이 있는 점심 장사만 할지, 식당을 줄여 부부끼리만 해야 할지, 아니면 아예 문을 닫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황씨는 정부의 탁상행정을 원망했다.

식당이 어렵게 되자 아내에게 더없이 미안하다. 아내는 당장 무릎 수술을 해야 하는데도 인건비를 줄이려 수년째 약으로 버티며 주방 일을 하고 있다. 11년간 명절 이외에는 쉬어 본적이 없는 아내다. 그나마 작년 11월 딸과 사위 덕에 11년만에 처음으로 다녀온 작년 11월의 3박4일간 가족여행이 위안이 됐다.

"이렇게 고생했는데도 결국 남은 건 기초연금수급자입니다. 150평 식당 주인이 기초연금을 받는 사회가 대한민국이고 자영업의 현실입니다." 황씨는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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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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