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실질적 지휘·명령 받는 파견관계 인정 부족” … 현대차 협력업체 근로자들 최종 패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수출차량을 국가·차종별로 야적장에 주차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에 대해 대법원이 불법 파견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현대차 근로자 26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원고들은 현대차 울산공장 하청업체 근로자들로서 수출용 신차에 대한 치장업무를 담당했다.

치장이란 최종 검사를 마친 차들을 야적장으로 운전해 향후 일정에 맞게 수출할 수 있도록 국가·차종별로 구분 주차하는 업무를 말한다.

이들은 파견 근로자인데도 현대차가 도급 계약을 위장해 사용했으므로 직접 고용하라고 주장하며 2016~2018년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소송을 병합해 함께 심리했다. 파견 근로자는 하청업체 소속이되 현장에서는 원청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이들로 최대 2년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파견법에 따라 2년을 초과하면 직접 고용해야 하며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 업무에는 파견이 금지된다.

반면 도급 계약을 맺으면 하청업체 소속으로 하청업체의 지시를 받아 일하게 되고 이 경우에는 직접 고용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겉으로는 도급 계약을 맺어놓고 실질적으로는 업무 지시를 하면서 파견근로자처럼 사용하는 ‘불법 파견’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소송을 낸 근로자들은 치장 업무가 생산 공정의 일부이고 현대차가 PDA(개인용 디지털 단말기)를 통해 작업에 필요한 정보를 지시했으므로 불법 파견이라고 주장했다. 피고인 현대차측은 자동차 직접생산공장이 아닌 간접공정 내지 생산보조업무에 해당하는 야적장 치장업무를 특정해 도급했고, 원고들은 사내협력업체의 지휘·감독을 받아 도급받은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1심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불법 파견이 아니라고 현대차 측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현대차가 시스템으로 원고들의 업무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며 해당 업무의 수행에 지시가 필요한 경우 형식적으로 협력업체의 관리자를 통해 하는 등 사용사업주가 지휘·명령권을 보유·행사했다”고 설명했다. 또 “사내협력업체가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독자적인 지휘·명령을 했다는 정황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원고들은 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현대차 울산공장에 파견돼 현대차의 지휘·명령을 받으면서 현대차를 위한 업무에 종사한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현대차가 원고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2심 재판부는 “현대차와 원고들 사이의 근로관계에서는 지휘·명령관계의 징표들을 발견하기 어렵고, 직접생산공정의 경우와 같이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지휘·명령을 대체했다고 볼만한 사정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원고들이 수행한 치장업무는 수출선적장 밖 주차장에 있는 차량을 야적장으로 운송해 국가·차종별로 구분해 주차하는 정형화된 업무”라며 “구체적인 작업방법을 정한 작업표준서 등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협력업체는 원고들을 포함한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작업배치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 자체적으로 근로자들을 선발했고, 필요한 경우 일용직 근로자를 고용해 업무에 투입하기도 했다”며 “인사권과 근태관리권 역시 협력업체에서 독자적으로 행사했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원고들의 상고를 최종 기각해 현대차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현대차 근로자 직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심은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들이 피고로부터 실질적인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원심의 판단에 근로자파견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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