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만든 성장엔진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경제의 기적이 끝났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국가 주도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첨단 제조 대기업을 육성한 한강의 기적이 이제는 낡은 모델이 됐고 수명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그 근거로 한국경제를 받쳐왔던 값싼 에너지와 노동력이라는 기존 성장모델의 두 기둥이 흔들리고 있는 점을 들었다. 한국정부는 그간 국영 에너지 독점 기업인 한국전력을 통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저렴하게 공급해왔다. 그러나 이젠 한국전력의 부채가 200조원을 넘어 이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은 또 값싼 우수한 노동력을 발판으로 성장해 왔으나 2022년 한국 산업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49.4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 64.7달러에 훨씬 못미치는 저조한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저출산 위기까지 도래, 2050년 생산가능인구가 2022년 대비 35% 가까이 감소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이 28%가량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수준에서 중국 쫓아가는 신세

사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70년대에는 연평균 8.7%, 1980년대에는 9.5%나 됐다. 그러나 이후 근로시간 축소와 자본 투입증가율 하락 등으로 현저히 낮아졌다. 앞으로 최악의 경우 2020년대 2.1%, 2030년대 0.6%, 2040년대에는 –0.1%로 갈수록 저하되면서 초 저성장 시대를 맞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2025~2029년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이 연간 2% 초반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2005~2022년 한국 10대 수출 제품 목록에 새로 추가된 품목은 디스플레이 단 1개뿐이었다. 또한 2012년에는 한국정부가 선정한 120개 국가전략기술 가운데 36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2020년 들어선 단 4개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는 한국 산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 증좌다.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까지의 성장모델인 모방에서 벗어나 초격차 선진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핵심 과학기술 11대 분야 상당수 항목에서 주요 선진국에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주요 5개국을 대상으로 11대 분야의 136개 핵심기술을 2년마다 비교해 발표하는 ‘기술수준 평가’에 따르면 2022년도 기준으로 최고인 미국을 100%로 봤을 때 EU(94.7%), 일본(86.4%), 중국(82.6%), 한국(81.5%) 순으로 평가됐다. 직전 평가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중국을 앞섰으나 2년 만에 역전돼 꼴찌로 쳐졌다. 바야흐로 중국을 따돌리는 게 아니라 중국을 쫓아가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FT는 사회 구조개혁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점도 우려했다. FT는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위해 각종 개혁이 필요하지만 ‘연금 주택 의료개혁이 정체되어 있으며 사교육비 지출은 늘고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져 구조개혁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또 한국정부의 제조업과 대기업 집중 투자 성장모델은 전체 근로자의 80% 이상을 고용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납품가격 압박 등으로 이어져 중소기업들이 직원과 설비에 투자할 자금 부족에 직면, 생산성 악화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체질 바꾸는 것 이외에 방법 없어

물론 FT의 이 같은 지적들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상한 경각심이 요구되고 정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 경제가 살길은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노동·교육·연금·의료 등의 구조를 시급히 개혁하고 규제혁파로 경제체질을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갈수록 심해지는 이공계의 인력 가뭄 현상을 타파하는 등 국가 성장동력을 회복하고 인구재앙을 극복할 특단의 대책을 짜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여야 공히 재정중독에서 벗어나 손쉽게 빚을 내 현금을 살포하는 포퓰리즘 폭주를 멈추어야 한다. 이와 함께 글로벌 경제 패권 움직임을 예의주시, 패권국들의 부당한 돌팔매질을 유연한 외교술로 현명하게 피해 나가야 하겠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