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 공영동물원 없애

새로운 역할 고민해야 할 때

“장애 동물들을 위한 2차 병원 같은 성격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향상된 진료 방법들을 만들 수 있도록 연구를 해서 야생동물구조센터 등에 전달을 하는 거죠. 이런 노력들을 하나둘 쌓여 나가서 야생동물들이 장애가 없이 나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좋을 거 같아요.”

10일 김정호 충북 청주시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수의사)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주동물원은 국내 1호 거점동물원이다. 거점동물원은 우수한 관리 역량을 가진 동물원이 주변 동물원의 교육·자문·역량 강화 역할을 한다. 지난해 12월 전시용 야생동물 복지 강화를 위해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이 시행되면서 해당 제도가 도입됐다.

11일 청주동물원에서 만난 김정호 수의사.

새로운 변화 위해선 정책적 뒷받침 필수

청주동물원은 지난해 7월 경남 김해 사설동물원에서 구조해온 ‘바람이’(일명 ‘갈비사자’)로 유명하기도 하다. 바람이는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 세간에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11일 기자가 찾은 청주동물원에서 만난 바람이는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이는 더위를 피해 암사자 ‘도도’와 함께 내실에서 쉬고 있었다.

청주동물원은 내실과 실외 방사장을 함께 개방한다. 동물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다면 내실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방사 시간에는 내실로 통하는 문을 닫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났다. 야생처럼 넓은 공간에서 살지 못하지만 되도록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다.

이날 청주동물원에서 만난 김 수의사는 “코스타리카는 최근 세계 최초로 공영동물원을 모두 없앴다”며 “동물원 자체가 약간 구시대적인 측면이 있는 만큼 새로운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가치를 변화시키려면 충돌도 생기고 여러 어려움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뒷받침은 필수다.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진심도 중요하지만 혼자만의 노력만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사육곰 살린 게 아닌, 사육곰이 우리를 살려

2018년 청주동물원에는 녹색연합이 시민 모금을 통해 구조한 사육곰이 들어왔다. 사육곰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이다. 토종 반달가슴곰의 경우 국내에선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지정돼 보호받지만 사육곰은 좀 다르다. 동남아나 일본 등지에서 들여온 다른 아종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달가슴곰 ‘반이’ ‘달이’ ‘들이’. 사진 청주동물원 제공

사육곰은 1980년대 정부에서 농가의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허용했다. 농가에서 곰을 수입해 기른 뒤 재수출하면 돈벌이가 될 것으로 판단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제도를 시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후 곰 사육 문제를 두고 논란이 계속됐지만 지난해 12월이 돼서야 사육곰의 소유·사육·도축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

“사육곰을 살렸다는 표현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은 사육곰들이 우리 동물원을 살린 셈이죠.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겼거든요.”

이날 청주동물원에서 만난 ‘반이’ ‘달이’ ‘들이’는 더위를 피해 해먹에서 쉬는 중이었다. 기자가 다가서자 ‘딱딱’ 목탁 두드리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본인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그들 특유의 위협적인 소리를 내는 것이다. 철장에서 내내 살다가 처음 동물원에 왔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김 수의사는 “처음 애들이 동물원에 왔을 때는 잔뜩 위축돼 있었다”며 “야생처럼 공간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활동할 수 있어야 동물은 물론 관람객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는 디스크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물고 뜯을 수 있어야 허리 근육이 생기는데 그러한 활동을 하지 못해서 병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식세포 냉동동결설비 도입, 새 역할 기대

청주동물원에는 추모관이 있다. 11일 기자가 찾은 추모관에는 수사자 ‘먹보’ 등 다양한 동물들의 명패가 걸려있었다.

청주동물원의 추모 공간.

먹보는 도도와 단짝이었다. 늘 몸을 붙이고 있는 등 금슬이 좋았다. 도도가 수술을 할 때 먹보가 내실 문을 긁으며 울고 먹보가 마지막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조금이라도 먹보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애를 쓰던 도도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생전에 인기가 많았던 만큼 추모관에는 먹보를 찾은 이들이 놓고 간 꽃다발 사진 메모 등이 많았다.

생태학에서는 특정 종을 전문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날 ‘어떤 종에게 특히 관심이 가냐’고 기자가 묻자, 김 수의사는 ‘특별히 없다’고 답했다.

그는 “동물들이 최대한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신경을 쓰지만 개인적으로 정은 주지 않으려고 한다”며 “안 그러면 (동물들이 떠나갈 때마다) 너무 힘들다”고 말문을 흐렸다.

김 수의사는 요즘 ‘주노미아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다국적이고 다학제 과학 연구 구상(이니셔티브)인 주노미아 프로젝트는 유전정보만으로 동물의 위기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주노미아는 진화론의 개척자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의 저서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다.

“생식세포 냉동동결설비가 들어설 계획입니다. 이렇게 되면 야생동물 생식세포에서 유전자원을 파악할 수 있게 되죠. 수의사들은 세포 추출을 잘 할 수 있으니 그 장점을 살려서 역할을 하고 이후에는 다른 연구자들이 이를 활용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청주시는 11월까지 국비와 도비 등 7억4300만원을 들여 청주동물원에 연면적 192㎡ 규모의 야생동물 보전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야생동물의 외과 수술과 건강검진이 진행된다. 생식세포 냉동동결설비을 구축해 멸종위기종 보전과 복원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야생동물을 진료하기 위한 수업을 따로 수의사들이 받은 적은 없어요. 호랑이 사자 등 고양잇과 동물을 치료할 때는 그에 준하는 지식을 기반으로 현장 경험 등으로 진료를 하는 거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 외과 수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설이 들어오면 주변의 수의사들이나 학생들이 함께 배워갈 수 있도록 실습 공간처럼 만들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보다 많은 동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진료 기술을 향상시키는 게 저희들의 역할이니까요.”

청주=글·사진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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