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조사 결과

경험자 10명 중 4명이 ‘보복 갑질’

괴롭힘 경험자 중 15%만 신고해

#. 직장인 김민철(가명)씨는 올해 초 회사 대표로부터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김씨가 이를 거부하자 업무배제, 폭언, 감시 등 집요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견디다 못해 지난 4월 김씨는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를 제출했고, 그 결과 올 6월 노동청은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대표에게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김씨는 여전히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가 노동청에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회사는 그의 사무실 책상을 복도와 창고로 치워버리며 괴롭힘의 강도를 높였다. 또 과태료가 부과되자 징계위원회를 개최해 해고했다. 모두 김씨가 사직서 제출 요구를 받은 지 7개월, 괴롭힘 신고 후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은 피해자의 피해 이전 일상 복귀를 돕기 위해 마련됐지만 현실에서는 용기를 내 신고를 하고 보복을 당하거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신고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이런 사례를 공개하며 “적지 않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들이 신고 이후 회사로부터 ‘보복 갑질’을 당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올해 1~8월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이메일 상담 1192건 중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은 824건(69%)이다. 회사에 괴롭힘을 신고한 것은 308건인데 이중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경험했다는 상담은 68건이었다.

한 직장인은 “사내에 상사의 괴롭힘을 신고하자 가해자는 나를 괴롭힘 가해자로 ‘맞신고’했다”며 “그런데 회사는 오히려 내게만 권고사직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가 올해 2분기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를 봐도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305명)의 57.7%는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응답했고, 19.3%는 ‘회사를 그만뒀다’고 답했다.

반면 ‘회사 또는 노동조합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12.1%, ‘고용노동부 등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2.6%에 그쳤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47.1%), ‘향후 인사 등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31.8%)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실제 신고를 한 응답자의 40%는 ‘신고 후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단체는 당국의 보수적 판단과 약한 처벌을 보복 갑질 문제의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고용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결과를 살펴보면 법 시행 이후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중 검찰송치 비율은 1.8% 수준이다.

특히 직장갑질119는 “현행 규정상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시정 기간을 14일 이내로 두고, 시정하지 않는 경우 범죄 인지를 하도록 하고 있다”며 “추후 시정만 하면 불리한 처우를 한 사용자를 사실상 봐주고 있다”고 짚었다.

또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가 무엇인지 제대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 장재원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형사처벌의 범위가 한정적인데다 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가 ‘불리한 처우’로 포괄적으로 되어 있어 수범자인 사용자에게 행위규범 내지 금지규범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실무상으로도 기소사례가 적고, 간혹 기소되더라도 그 처벌 수위가 낮아 적지 않은 사용자는 문제가 생겨도 큰 불이익 없이 손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의 ‘불리한 처우’의 유형을 최소한 남녀고용평등법 수준으로 구체화하고, 보다 적극적 수사를 통해 법 위반 행위에 엄중히 대응할 필요가 크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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