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내각제를 실시하는 일본에서 국회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의 총선은 정치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다. 그 결정에 따라 경제정책 방향도 가늠하게 된다. 10월 27일 실시된 총선 결과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2009년 총선 이래 15년 만이다. 그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얻지 못했는데 이는 1993년 총선 이후 31년 만의 일이다. 여론은 “일어날 것이 일어났다”는 분위기다. 국민은 가난해졌는데 자민당 정치인은 정치자금을 얻으려는 ‘정치와 돈’ 문제를 깨끗이 청소하지 못해서 자민당 지지율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3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연간소득 중앙치는 550만엔 대 372만엔으로 많이 가난해졌다. 2023년 일본의 노동자 실질임금은 1990년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올해 평균임금은 1999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으나 실질임금은 고물가로 올 5월까지 26개월 연속 감소한 후 6~7월에만 상승하고 8월에 다시 감소했다.
국민은 가난해졌는데 금권정치로 지지율 급락한 자민당 참패
자민당을 20년 이상 지배해온 우익세력(구 아베파)은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몰락했다. 그렇다고 1993년처럼 야당연합세력으로 정권을 교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과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그리고 일본공산당 사이의 입장이 많이 달라 연립정권을 이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원인 참의원은 자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어 정권교체 후에도 정국 운영이 곤란하다. 결국 제1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일부 야당(또는 개별 의원)을 여당으로 끌어들이거나 야당과 ‘부분적 정책 연합’을 이뤄 중의원에서 자민당 총재가 수상으로 지명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선거에서 크게 약진한 정당은 국민민주당이다.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와 7석에 불과했던 의석이 28석(선거구 11, 비례대표 17)으로 늘어났다. 이 숫자는 중의원 과반수에서 18석이 부족해 불안정한 자민-공명 연립여당의 정국 운영에서 결정권(캐스팅보트)을 쥘 수 있는 유의미한 규모다. 국민민주당 다마키 대표는 29일에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 참여를 부인했다.
하지만 여당과의 부분적 정책연합 가능성은 열려있다. 2023년 11월 당시 기시다 내각에서 자민-공명-국민 3당 실무자 협의를 진행한 경험도 있다. 자민당과 국민민주당은 안전보장, 원자력 이용, 헌법개정 같은 분야에서는 정책 유사성이 높아 보수적 정책 연합이 이미 가능한 상태다. 앞으로는 경제정책 측면에서도 이시바 내각이 국민민주당과 협력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민민주당은 청년층에 파고드는 경제정책을 집중적으로 제시했다. “젊은 세대의 실수입을 늘리겠다”가 주요 슬로건이었다. 구체적인 방안은 △세부담 경감 - 소비세를 5%로 인하, 소득세 감세, 기초소득공제 103만엔을 178만엔으로 증액 △가계 지원 - 전기요금 지원, 주유소 기름가격 지원 △사회보험료 경감 - 현역세대 부담 경감 △육아·청년 지원 - 고교교육·급식비·수학여행비 무상화, 아동수당 등의 소득제한 철폐 등이었다. 재정을 확대해야 하는 정책들이다. 이에 호응하는 것처럼 비례대표투표(정당명 기입)에서 20대 투표자의 26%(1위), 30대 투표자의 21%(동률 1위)가 국민민주당에 투표했다. 국민민주당은 청년층이 가장 지지하는 정당이 되었다.
이시바 내각 야당과 정책 연합 통해 제정확대 정책 실시 전망
총선 직후인 28~29일 일본 증시는 일제히 상승했다. 자민당이 야당과의 정책 연합을 통해 재정확대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가상승의 한 원인이다. 돈이 많이 풀릴 것이라는 전망은 엔저 분위기를 낳고 있다.
지난 9월까지는 기시다 전 내각이 긴축재정 정책을 내세우면서 금리인상과 증세를 추진했다. 이제 이시바 내각이 이를 바꾸어 국민민주당이 제시하는 20~30대 청년층 지원을 위한 재정확대 정책을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재원 조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