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의 워싱턴 규탄 직후 보란듯 도발…유엔 안보리에선 날선 파병 공방도

기자회견하는 한미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왼쪽)과 김용현 한국 국방부 장관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국방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북한이 31일 오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1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군은 오늘 오전 7시 10분경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탄도미사일을 포착했다”면서 “고각으로 발사된 장거리탄도미사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군은 경계태세를 격상한 가운데, 미 일 당국과 북 탄도미사일 관련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하면서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일본 방위성도 관련 내용을 속보로 전한 뒤 북한 미사일이 홋카이도 서쪽 약 300㎞ 해역 낙하한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의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는 한미 국방장관이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개최하고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발표한 직후에 쏘아 올려 한미 양측을 향한 불만과 경고를 담은 것으로 해석됐다.

북한이 ICBM 도발을 한 것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해 12월 18일 ICBM 화성-18형을 발사한지 10개월 만이며, 탄도미사일 도발은 지난달 18일 이후 43일만이다.

북한은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는 파병론을 놓고 한미와 격돌했다. 한미의 규탄에 대해 러시아와 북한이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안보리 회의에서 “북한군은 정당한 군사 목표물이 돼 총알받이 신세가 될 우려가 있고, 병사들이 러시아로부터 받아야 할 돈은 김정은의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라며 “같은 한민족으로서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민을 느낀다. 이들이 휴전선 이남에서 태어났다면 훨씬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북러 간 군사협력은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도 불구하고 불법이자 다수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북러 간 전례 없는 군사협력으로 유라시아 동서 양쪽의 지정학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로버트 우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북한군이 전장에 투입된다면 이는 갈등의 심각한 확산을 의미한다”며 “러시아가 점점 절박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이란과 북한에 점점 더 군사적으로 의존하면서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과 중동 지역을 위협하는 북한과 이란의 능력이 재앙적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세르히 올레호비치 키슬리차 우크라이나 대사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북한 병사들은 현대전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우리 모두 평양의 정권이 이 경험 많은 부대를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지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북한과 러시아 정부 대표는 북한군 파병을 명시적으로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파병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등 사실상 파병을 간접 시인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북한군 파병에 대해 “놀랄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이라며 “서방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네벤자 대사는 이날 발언 마무리 전 한국을 향해 “서방의 교묘한 수작에 속지 않을 정도로 한국 동료들이 현명하기를 희망한다”라며 “우리는 모스크바와 서울 간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재개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한국의 자제심을 높이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에서도 한국 국민의 절대다수는 우크라이나 갈등에 관여하기를 원하지 않음을 보여줬다”라고 언급했다.

북한 유엔 대표도 러시아 주장을 거들었다. 김성 주유엔 북한 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다양한 전차, 전투기 등 다양한 군사장비를 공급을 확대해왔다”며 “중요한 점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6월 러시아 영토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과 러시아는 정치, 경제, 군사 및 문화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양자 관계를 발전시킬 권리가 있고, 이는 북러 조약에 따라 국제법상 규범에 완전히 부합한다”며 “만약 러시아의 주권과 안보 이익이 미국과 서방의 지속적인 위험한 시도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 대사 발언이 끝나자 우드 미 차석대사는 답변권을 얻어 “이런 (안보) 불안정 행위들은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거듭 우려를 표시한 뒤 “만약 북한군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진입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주검으로 복귀(return in body bags)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미로슬라우 옌차 유엔 사무차장보는 이날 회의에서 북한군 파병에 대해 “유엔은 이 같은 발전에 대해 추가적인 세부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제기된 주장이나 보고를 검증하거나 확인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과 격화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삼가해 줄 것을 관련 당사자 모두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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