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환경 변화에 디지털 맞춤형 정책 절실

575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들의 문맹률은 조사가 무의미할 정도인데 반해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존 독서 정책에 디지털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결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1945년 광복 후 한국인의 77.8%는 한글을 읽을 수 없는 문맹이었다. 건국준비위원회가 1945년 9월 시정방침을 통해 '일반 대중의 문맹 퇴치'를 중요 과제로 선정할 정도였다. 이후 '우리나라 말과 글을 배우자'는 문맹 퇴치 운동으로 이어져 문맹률은 1970년 7%로 급감하더니 현재는 1% 대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문맹 퇴치에 성공한 것이다.

공원독서│초여름 날씨를 보인 지난 5월 19일 서울숲 공원 그늘에서 시민들이 독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문제는 문해력이다.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는 1956년부터 문해력을 글을 읽고 쓰는 기초적인 능력을 말하는 '최소 문해력'과 사회적 맥락 안에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인 '기능적 문해력'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문맹률이 낮으면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글의 내용은 알 수 없어 '실질적 문맹'에 해당한다. 실질적 문맹이란 글자는 읽으면서도 글의 내용,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부가 18세 이상 1만4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3차 성인 문해 능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1~2학년 수준 문해력(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못 갖춘 '1수준'의 비율은 4.5%였다. 전체 성인 인구(약 4400만명)를 고려하면 200만명 정도가 기본적인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비율은 2017년 조사 때(7.2%)에 비하면 2.7%p 줄었다.

또 기본적인 읽기·쓰기·셈하기는 가능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잘 활용하지 못하는 '2수준'(초등학교 3~6학년)은 186만명(4.2%), 경제활동 등 복잡한 생활에서 읽기·쓰기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3수준'(중학교 1~3학년)은 500만명(11.4%) 정도로 추산됐다. 복잡한 일상생활에도 문제없이 충분한 문해력을 갖춘 '4수준'의 비율은 79.8%로 2017년보다 2.2%p 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문해력 차이를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학력과 월 가구 소득의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를 나오지 못한 성인의 경우 66.9%가 1수준에 머물렀고 4수준 이상은 8.5%에 그쳤다. 월 가구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성인은 34.3%가 1수준이었지만, 월 500만원 이상은 4수준 이상이 91.6%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신문 기사, 공공기관 문서 등 다양한 지문을 주고 기본적인 이해 능력과 수리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직장인 절반 "비즈니스 문서 독해 어렵다" = 사정이 이렇다보니 직장 내에서도 글을 읽고 쓰는 능력 이른바 '문해력' 부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바로면접 알바콜은 최근 직장인과 자영업자 등 1310명을 대상으로 '현대인의 문해·어휘력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와 간단한 테스트를 진행했다. 먼저, 보고서나 기획안 등 비교적 내용이 길고 전문용어가 많은 비즈니스 문서를 읽을 때 어려움을 느끼는지 응답자에게 물었다. 그 결과, △대부분 느낀다(6.3%) △종종 느낀다(44.5%)로 응답자의 과반은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문해력을 비롯해 순우리말로 날짜 세는 법, 한자어, 맞춤법 등 간단한 테스트도 진행했다. 총 5문제(객관식 4문제와 주관식 1문제 포함)를 동일하게 제시하고 풀어보게 한 결과, 모두 맞힌 응답자는 100명 중 8명 꼴(8.6%), 객관식 네 문제를 모두 맞힌 응답자는 18.5%로 나타났다. 특히, 주어진 지문을 읽고 이상·이하·초과·미만 수의 범위 중 알맞은 것을 빈칸에 기입하는 주관식 문제는 응답자 10명 중 3명(29.7%) 정도만 정답을 맞혔다.

◆매체이용 다변화가 원인 = 전문가들은 결국 문해력이 독서율과 상관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평균 독서율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민 독서율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만 19세 이상 성인 6000명과 초등학생(4학년 이상) 및 중·고등학생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성인의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52.1%, 독서량은 6.1권으로 2017년에 비해 각각 7.8%p, 2.2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초·중·고교 학생의 경우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90.7%, 독서량 32.4권으로, 2017년과 비교하면 독서율은 1.0%p 감소했으나 독서량은 3.8권 증가했다. 우리나라 성인의 종이책 독서율은 △2013년 71.4% △2015년 65.3% △ 2017년 59.9% △2019년 52.1%로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국민들이 독서하기 어려운 이유로 제일 많이 꼽은 것은 성인의 경우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29.1%)이었다. 이는 2017년까지 가장 많은 사람들이 꼽았던 '시간이 없어서'를 밀어낸 것으로, 디지털 환경에서의 매체 이용 다변화가 독서율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변화된 독서 환경 고려해야 = 그나마 독서, 기사 정독, 관련 교육 참여 등 본인의 문해력 향상을 위해 투자할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89.9%의 응답자는 계획이 있다고 응답해 정부 정책에 따른 변화 가능성을 남겨뒀다.

이 대목에서 전문가들은 전자책 이용률 증가에 주목하고 있다. 전자책 독서율은 성인 16.5%, 학생은 37.2%로 2017년보다 각각 2.4%p, 7.4%p 늘어나는 등 증가 추세다. 특히 20~30대 중심으로 증가폭이 크다. 2019년부터 조사를 시작한 오디오북 독서율은 성인 3.5%, 학생 18.7%(초등학생 30.9%, 중학생 11.6%, 고등학생 13.9%)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2년 사이 연령대별 독서율(종이책 + 전자책)을 보면 대학생은 2.7%p, 30대는 2.0%p 증가한 반면, 50대에서 8.7%p, 60대 이상에서 15.8%p 하락했다. 지역 단위로는 대도시가 3.8%p 소폭 하락한 반면 소도시는 15.1%p 하락해 상대적으로 하락폭이 컸다.

이번 조사결과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매체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는 상황에서 독서 진흥을 위해 늘어나는 비독자 인구를 줄이고 '습관적 독자'(1주일 1회 이상 책을 읽는 독서 인구)를 늘리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비독자 편입 폭이 큰 고령층, 저소득층, 소도시 주민을 위한 맞춤형 지원과 전자책·오디오북 등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독서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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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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