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상 국립어린이과학관, 지구과학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대부분의 도시가 물에 잠겨버린 2135년, 인류는 지구를 떠나 지구와 달 사이에 ‘쉘터’를 만들어 이주했다. 이 중 몇몇 셸터들이 자치를 선언하며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해 개발한 최고의 전투 A.I. 로봇이 완성되려 하고 있다. 올해 설 연휴 직전 공개된 강수연 배우의 유작 SF 영화 '정이’의 내용이다.

 

정이는 지구 멸망 이후를 다룬 이른바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이다. 지구의 종말, 엄밀히 말해 인류가 지구에서 더 이상 살기 어려워진 상황에 대한 스토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인터스텔라(2014)는 기후변화로 식량을 생산할 수 없게 된 지구, 월 E(2008)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지구, 매드맥스(2015)는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를 그렸다. 인류는 스스로 지구를 망치고, 새롭게 살아가기 위한 또 다른 지구를 찾는다. 인류가 생명 거주 가능 영역(Habitable Zone), 골디락스 행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고 외계 행성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뭘까.

생명 거주 가능 영역은 태양, 즉 별(항성)과의 거리가 적당해서 행성 표면에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구간을 의미한다. 이 구간 안에 존재하는 행성을 골디락스 행성이라고 부른다. 다만 골디락스 행성이라고 해서 모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태양계의 생명 거주 가능 영역은 금성, 지구, 화성이다. 하지만 금성은 온실 기체로 가득한 두터운 대기 때문에 너무 뜨겁고, 화성은 대기가 희박해서 생명이 살 수 없다. 생명의 행성이 되기 위해서는 액체 상태의 물 뿐 아니라 지표 온도를 적당하게 유지하고 자외선을 차단해줄 수 있는 대기도 있어야 한다. 우주의 방사능을 막아줄 자기장도 필요하다. 결국 태양계에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생명체, 인류가 살 수 있는 행성은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생명이, 인류가 살기에 적당한 행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인류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밤하늘을 바라보며 지구 밖, 저 먼 우주에도 우리 외의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으로 믿었다. 작년 가을 작고한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1960년대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지적 외계 생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방정식을 만들고, 전파를 통해 외계 지적 생명을 탐사하는 SETI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1972년 발사된 목성 탐사선 파이어니어 10호에는 ‘지구인의 편지’를 담은 금속판이 탑재되었고,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2호에는 모차르트의 마적 등을 담은 골든레코드가 실렸다. 외계 지적 생명체의 회신을 기다리는 일말의 기대였다.

과학기술 발달로 활발해진 외계 행성 찾기

로켓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학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외계 행성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외계 생명체를 찾는 것보다 먼저, 생명이 살 가능성이 있는 행성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외계 행성은 주로 통과 측광법(Transit Photometry)으로 불리는, 행성이 항성 주위 궤도를 돌면서 그 앞을 지나갈 때 미세하게 감소하는 빛의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찾아낸다. 2009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쏘아 올린 케플러(Kepler) 우주 망원경이 가장 대표적이다. 2018년부터는 테스(TESS) 우주 망원경이 뒤를 이어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주 망원경이 관측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면 과학자들은 외계 행성이 맞는지, 과연 생명이 살 수 있는지를 분석한다. 수만 개의 후보군 중에 이렇게 해서 찾아낸 외계 행성만 5천개가 넘는다.

천칭자리의 글리제 581g*, 백조자리의 케플러-452b, 물병자리의 트라피스트-1e 등 몇몇 외계 행성들은 항성과의 적당한 거리는 물론 크기, 밀도, 물질 조성 등에서 지구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 골디락스 행성일 것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추가 연구 결과 이를 부정하는 여러 증거가 발견됐다. 지구의 달처럼 공전과 자전의 주기가 일치해 한쪽은 계속 낮이고 한쪽은 계속 밤인 상태가 지속되는 조석 고정 현상을 보이거나 항성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태양풍(항성풍)을 피하기 어렵거나, 많은 양의 자외선 방출로 대기가 파괴되어 자외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추정되는 식이다. 아무리 골디락스 행성이어도 이런 조건이라면 생명체가 살기 힘들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다. 2년 전 크리스마스에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그 선두에 있다. ‘우주를 보는 인류의 눈’으로 불리며 수많은 발견을 이뤄낸 허블 우주 망원경의 뒤를 잇는 제임스 웹은 외계 행성 관측 결과도 선보이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WASP-39b 라는 토성 크기의 외계 행성 대기에서 물을 포함해 칼륨,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이산화황, 나트륨 등 지구 대기와 유사한 성분들을 검출해 내며 외계 행성 대기 연구의 새 장을 열었다. 최근에는 또다른 외계 행성도 발견했다. LHS 475b로 이름 지어진 이 행성은 지구에서 41광년 떨어져 있는데 지름이 지구의 99%로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 지구에 비해 수백 도 더 뜨겁기는 하지만 대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NASA는 1월 10일에도 테스 우주 망원경이 지구 크기 외계 행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10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지구 크기 95%의 TOI 700e는 지구와 유사한 암석 행성이고 지구보다 약간 더 따뜻하며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발전하는 우주 망원경 덕에 우리는 이제 외계 행성 발견 소식을 하루가 멀다하고 듣는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트라피스트-1e나 LHS 475b도 최소 40광년, 다시 말해 빛의 속도로 40년을 달려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우리가 찾아 가는 방법을 찾는 것은 둘째고, 전파로 소식을 보내더라도 연락을 보내고 받는 데에만 80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지구 대체 가능성 찾기보다 지구에 관심을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얘기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만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인류의 지구 밖 이주는 최소한 다음 세대까지도 불가능한 희망일 것이다. 게다가 외계 행성을 찾아간들 그 행성의 원주민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보다 아직까지는 유일한 생명의 행성 지구를, 당장 우리가 지켜야 할 지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현실적이다.

*외계 행성의 이름은 항성으로부터 가까운 순서대로 항성 이름-알파벳으로 명명한다. 글리제 581g는 항성 글리제의 581의 7번째 행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