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출세를 위해 조강지처를 버리고 권력자의 딸과 재혼한다. 이후 장인과 처남을 죽이고 매제도 처형한다. 재혼한 아내와 전처 소생인 장남도 죽인다. 이들이 간통했다는 혐의를 씌웠다. 모진 고문에도 아내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지만.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 얘기다. 여기까지 보면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그는 대제(大帝) 칭호가 붙여진 첫번째 황제다. 기독교정교회는 성인 반열에 올렸다. 그동안 박해를 받던 기독교를 공인한 공로이겠다.

'정관의 치'로 유명한 당 태종도 그렇다. 권력을 위해 골육상쟁 왕자의 난을 벌인다. 태자인 형과 아우를 죽인다. 황제를 협박해 스스로 태자가 된다. 그의 두 손은 무자비한 살육으로 피범벅이 된다. 여기에도 반전이 있다. 태종 이세민은 자신의 이름대로 제세안민(濟世安民)의 시대를 열었다. 실크로드로 상징되는 당나라 황금기이다. 그가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정관정요'는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조선의 영조가 탐독했다고 한다.

정관정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지부족(知不足)이다. 자부심 넘치는 최고 권력자에게 부족함을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자부심과 자만심은 반걸음 차이이다. 자부심의 정점에서 자만심 한 발짝은 곤두박질로 이어진다. 범인(凡人)의 자만심은 한 인생을 파국으로 이끌지만, 권력의 자만심은 국가의 흥망을 가른다.

그러기에 "명군(名君)은 늘 자신의 단점을 생각한다. 그래서 현명하게 된다. 암군(暗君)은 자신의 단점을 변명하며 옹호한다. 결국 어리석게 된다"고 일깨운다. 수나라 양제가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고 단점을 감싸자 신하들이 그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제대로 간언하지 못해 결국 망한 것을 빗댄 것이다.

자신의 단점을 아는 사람이 현명한 리더

결국 인사가 만사다. 성공한 권력자는 주위에 스승 같은 사신(師臣)과 친구 같은 우신(友臣)이 있다. 주나라 무왕에게 강태공이 사신이요, 한나라 유방에게 장자방이 우신이겠다. 이들이 부족함을 메워주면서 통치가 바로서게 된다. 반면 섬기는데 능한 예스맨 복신(僕臣)은 늘 경계해야 한다. 지록위마의 주인공 조고가 대표적이겠다.

과연 우리의 지도자는 자신의 부족함과 단점을 알고 있을까. 그리하여 사신과 우신으로 빈부분을 보완하고 있을까. 수능시험의 킬러문항 문제점을 짚어내고 곳곳의 이권 카르텔을 적시하는 모습에서 만기친람의 자신감(혹은 자만심)이 어른거리는 것은 지나친 우려일까.

지나침도 모자람도 경계해야 한다. 중국의 옛 군주들이 자리 오른쪽에 기울어진 그릇을 둔 이유이다. 비면 기울고, 알맞게 물을 채우면 바로 서고, 가득 차면 엎어지는 그릇이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가득 차도 엎어지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요. 공자는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음으로, 공을 세우고도 겸양으로, 용맹하면서도 조심으로, 부유하면서도 겸손으로 처신해야 한다"고 답했다.

최고 권력자뿐만 아니다. 무릇 공직에 뜻을 둔 인사들도 스스로 지부족(知不足)을 가늠해봐야 한다. 중국 남송의 유학자 주자는 "세번 사양한 뒤 나아가고, 한번 읍함으로써 물러난다"고 했다. 벼슬길에 나갈 때는 어렵게, 떠날 때는 쉽게 했다는 거다. 예기(禮記)의 난진이퇴(難進易退)를 본받은 거다. 임금(국민)을 섬기면서 난진이퇴하면 공직이 반듯한데 거꾸로 이진난퇴하면 문란해진다는 거다.

조선의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덧붙인다. "군자는 공직의 무거움을 안다. 그래서 자신이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한다. 소인은 감지덕지하며 공직을 덜컥 떠맡는다. 이런 부류는 대체로 탐욕스럽거나 경망스러운 자이다."

공직의 무거움을 헤아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안다면 "충성!"하며 감읍할 일이 아니다. 알고 보니 인사권자가 자신보다 더 전문적인 식견을 가졌다면 부끄러워서라도 후다닥 물러날 일이다. 설령 전문적인 식견이 아니라 일에 대한 열정을 배워야 하는 처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인사권자가 꼭 자리에 연연한 자들을 취하는 거다. 음식상을 바라보며 귀를 늘어뜨리고 꼬리를 흔드는 비루한 이들을 말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인사권자가 이들을 부르기 때문"이라는 거다.

인사가 복신 챙기기는 아닌지 돌아봐야

지난달 29일 차관급 13명을 보임한데 이어 후속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장관은 그대로 두고 차관과 장관급 특보를 포진시키는 기발한 인사도 선보인다. 내정설을 지나 내정확정설로 이어지는 기묘한 장관급 하마평도 요란하고. 과연 사신과 우신의 보임인지, 복신 챙기기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국민에 낙제점을 받은 정권은 대체로 인사에 실패했다. 앞선 정권도 그렇다. 후유증도 길고 깊다. 그럼에도 사과 한마디 없다. 부지부족(不知不足) 때문이겠다. 합격점을 받는 비결은 간단하다. 인사권자는 지부족(知不足), 공직자는 난진이퇴(難進易退)하면 된다. 물론 가장 어려운 일이다.

박종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