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신한대 교수, 언론인

권력과 언론은 숙명적으로 갈등관계다. 권력은 언론을 소통과 홍보의 도구로 여기지만, 언론은 권력비판을 존재의 의미이자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상대를 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권·언 사이엔 늘 긴장이 흐르게 마련이다. 만약 권력과 언론이 매사 손발이 척척 맞아 찰떡궁합 소리를 듣는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게 이상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권력은 언론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 미공개·비공개정보, 비밀정보까지 손 안에 쥐고 사태를 훤히 꿰고 있기에 파편 같은 조각정보로 퍼즐 맞추듯 사건의 윤곽을 그려 나가는 언론보도를 보면 크고 작은 오류가 도드라져 보이기 십상이다.

반면 강제조사권이 없는 언론 입장에서 보안의 벽을 넘어 진실에 접근하려면 여기저기 귀동냥 취재를 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 황소 뒷다리라도 얻어 걸리면 코끼리 몸통을 잡은 것 마냥 오인하기도 한다. 그렇게 헛다리짚은 취재물은 대개 내부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걸러지지만 가끔은 구멍이 뚫려 오보가 나가기도 한다. 그때마다 권력은 언론이 무책임하게 허위사실을 보도한다며 역정을 내곤 한다.

여기까지는 어느 권력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던 선거 1주일을 앞두고 한 방송사가 "세월호 인양은 문재인 후보에 갖다 바치는 것"이라는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발언을 여과없이 보도했다가 '공작적 선거 개입'이라는 항의를 받고 부랴부랴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방송을 세차례나 했던 사례가 우선 떠오른다.

문재인정부 시절 한 신문이 조 국 전 장관 부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일러스트를 엉뚱하게도 성매매 기사에 실었다가 소송당한 사건, 윤석열정부 들어 대통령 관저 선정 과정에 역술인 천공이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기자가 검찰에 기소된 사건 모두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언론자유 외치다 권력잡으면 책임 강조

권력을 잡기 전에는 언론자유를 외치다가 잡고 나면 언론 책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돌변하는 것도 권력의 속성이다.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는 불후의 명구를 남긴 미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제퍼슨조차 막상 대통령이 된 뒤에는 신문의 비판보도에 앙앙불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권력이 언론비판을 달갑게 받아들여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현실세계에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문제는 언론의 흠결을 빌미로 권력이 언론을 제도적으로 규제하겠다고 나설 때다. 문재인정권 시절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에 징벌적 배상금을 부과해 혼쭐 내주겠다며 입법 추진하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금 여당인 당시 야당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악법"이라며 강력 반대해 무산되었지만, 언론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던 문재인정권 또한 권력 일반의 속성에서 다를 바 없음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윤석열정권 들어서자 여야 입장이 바뀌었을 뿐 비판 언론 혼쭐 내는 규제책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나온다. 그런데 그 강도가 거칠고 사납다. 조금만 잘못해도 가차 없이 형벌을 내리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모습이다.

정부는 소위 가짜뉴스를 한번만 보도해도 언론계에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지난 대선 직전 나온 대장동 관련 '김만배 녹취록' 보도에 대해 "희대의 대선 공작" "사형에 처해야 할 반국가범죄" 운운하며 살벌한 분위기를 띄우더니 기자 7명을 무더기 고발하고, 검사 10여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려 언론사 수사에 나선다. 해당 보도를 한 방송사 3곳에는 이미 징계가 내려졌고 이젠 인터넷 신문기사에 대해 오류가 있는지 심의하겠다고 한다.

언론계에 몰아치는 이런 찬바람의 진앙지는 아마 대통령일 것이다. 대통령이 언론보도를 보고 버럭 화를 내면 보좌진은 나중 일이야 어떻든 법적조치부터 취하고 본다. 박근혜정권 때 세월호 관련 추측 기사를 쓴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 문재인정권 때 문 대통령을 '간첩' '공산주의자'라고 한 목사와 변호사에 대한 형사소송이 그렇다. 모두 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세웠지만 한결같이 무죄판결 나면서 국제 망신만 샀다.

대통령 명예훼손죄 인정 판례 없어

이번에도 '피해자 윤석열의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통령 명예훼손죄를 인정한 형사판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만큼, 법원 판단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최고의 살아있는 권력자가 자기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공권력에 구제를 호소한다는 게 민주국가에서 성립되는 논리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진정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대통령이라면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정신으로 결단을 내릴 수 없을까. 알다시피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여서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면 수사는 그날로 종결된다.

이종탁 신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