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억원에서 시작해 삼성 지배력 확보
‘국정농단’ 뇌물 공여 유죄 최대 위기 처해
‘불법승계’ 등 1심 무죄, 큰 고비 넘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0년간 세번의 재판을 거치면서 전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의 승계 작업이 9부 능선을 넘었다. 이미 결론이 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입과 관련된 ‘삼성특검’, ‘박근혜정부 국정농단’에 연루된 뇌물 공여 사건에 이어 최근 1심에서 무죄가 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된 사건이다. 매 시기마다 사회적 관심과 찬반 양론이 극명하게 갈렸지만 이 회장은 ‘아슬아슬’ 사법리스크를 피해 삼성이란 거대한 기업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에버랜드 주식 31.37% 보유 최대 주주 = 이 회장의 승계 작업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매입 의혹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 회장은 이건희 전 회장으로부터 종잣돈 61억4000만원을 증여받았다. 이후 계열사 주식을 거래해 차익을 벌어들여 자금을 불렸다.
이 회장은 이 돈으로 1996년 에버랜드 CB를 사들였다. CB는 쉽게 말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이다.
당시 에버랜드가 7700만원에 발행한 CB를 삼성 계열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인수하지 않았고, 남은 CB는 에버랜드 이사회 결의로 이 회장 남매에게 배정했다. 당시 에버랜드 주식 장외거래 가격이 10만원 안팎인데 이를 7700원에 매입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 회장은 48억3090만원으로 에버랜드 주식 31.37%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됐다.
1999년에는 삼성SDS도 헐값으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이 회장 등 남매에게 넘겼다.
에버랜드는 이때부터 삼성 승계 작업의 핵심으로 지목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집중적인 감시와 의혹 제기의 대상이 됐다.
법학교수 43명이 2000년 6월 이건희 전 회장 등을 고발했고, 검찰은 2003년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이 사건은 특검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2007년 출범한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이 회장을 피의자로 소환 조사했으나 이건희 전 회장 등을 기소하는 선에서 이 회장은 무혐의 처분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삼성SDS 배임은 유죄를 받았지만 에버랜드에 대한 배임은 기존 주주들에게 배정하는 절차를 거쳤다는 이유로 2009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각종 기법 동원, 그룹 지배력 확보= 에버랜드 최대 주주가 됐지만 이 회장이 그룹 전체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에 대한 직접 지배력을 강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최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된 재판이 진행중이다.
검찰은 삼성 경영권의 핵심이 그룹 내 상장 계열사 시가총액 약 2/3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배력에 있다고 봤다.
이 회장이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분 구조로 승계의 기반을 닦았지만, 순환출자 등에 의존하는 간접적 지배로 규제 등에 노출돼 있어 보완이 필요했다는 것이 검찰 시각이다. 이에 삼성전자 주식 4.06%를 보유한 2대 주주이던 삼성물산을 에버랜드에 합병시킴으로써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직접 지배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승계 계획안 ‘프로젝트G(거버넌스)’가 2012년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마련됐다고 검찰은 공소장에 적었다.
프로젝트G의 실행을 위해 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부문 인수, 바이오산업 참여 등 ‘몸집 키우기’가 이어졌고, 이후 에버랜드가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뒤 삼성물산과의 합병에까지 나아갔다는 것이 검찰이 파악한 흐름이다.
이런 흐름의 마지막 단계로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신 삼성물산’으로 합병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의 높은 지분 비율을 유지하고, 엘리엇의 반대 등에 따른 합병 무산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각종 불법 행위들이 자행됐다는 것이 검찰의 공소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는 제일모직 1주가 삼성물산 약 3주와 동일한 가치라는 의미의 ‘1:0.35’ 비율로 2015년 9월 1일 합병했다.
합병 이후 신 삼성물산은 과거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구조를 통한 지배력(삼성전자 지분 7.21%)과 옛 삼성물산이 가졌던 지배력(삼성전자 지분 4.06%)을 모두 갖춘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지배회사)가 됐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 회장은 전혀 지분이 없던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 주식 4.06%를 직접 지배하게 됐다”며 “제일모직의 삼성생명 지배관계에 있어 위험 요인이던 금융지주회사 전환 문제도 종국적으로 해소됐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가운데 이 회장의 무혐의가 확정되면 사실상 승계 과정에서의 문제는 해소될 전망이다.
◆1심 판결 대법 판결과 충돌, 사법리스크 여전 = 이 회장의 승계과정에 대한 수사가 촉발된 계기는 2016~2017년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삼성이 이 회장의 안정적 승계에 도움을 받고자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뇌물로 건넸다고 파악했다.
엘리엇 등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일모직과 합병을 반대하자, 삼성물산 지분 11.9%를 가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청와대가 힘써주기를 청탁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2017년 2월 검찰에 구속됐고 재판 끝에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9년 8월 29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의 합병 등은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을 진행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이 같은 확정적 판단은 이 회장의 뇌물공여죄가 인정된 근거이자 이후 검찰 수사의 마중물이 됐다. 검찰은 2020년 9월 이 회장을 재판에 넘길 때도 이 판결을 인용했다.하지만 이번 승계를 위한 부당합병 및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한 1심 판결은 대법원의 국정농단 사건 판결과 달리 합병의 목적과 과정 모두에 “문제없다”고 이 회장 손을 들어주었다. 이 회장은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검찰이 상소(항소, 상고)할 가능성이 높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있을 때까지 부당승계와 불법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김선일·서원호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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