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장관들 안보리 마비·이스라엘 비판 … 지난해 우크라 전쟁 규탄 때와 대조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최근 이틀간 브라질에서 열린 G20 외교장관회의에서 미국은 반복적인 비판을 받으면서 외교적 고립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세션이 일부 취재진들에게 그대로 노출되면서 미국의 고립상황이 드러났다는 것이 WP의 설명이다. 비공개 세션이기에 참석자들은 솔직한 생각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회의에서 G20회의 주최국인 브라질 외무장관 마우로 비에이라는 “이런 무활동 상태는 무고한 생명의 손실을 초래한다”며 유엔 안보리 마비를 강하게 비난하며 회의를 시작했다.
미국의 긴밀한 동맹국인 호주 역시 가자지구에서의 즉각적인 휴전을 지지했으며, 이스라엘이 100만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거주하고 있는 남부 도시 라파에서 군사 작전을 발표하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세션 참석자인 호주 대표 케이티 갤러거는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 번 말한다. 이 길을 따르지 말라. 이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고 비난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한층 더 강도를 높였다.
날레디 판도르 남아공 국제관계 장관은 “이스라엘이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세계 지도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지배하도록 허용했다”면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국민을 실망시켰다”라고 말했다.
WP는 실수로 방송된 이같은 발언들은 지난해 인도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기 위해 세계 강대국들을 단결시키려 했던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당시 블링컨은 모스크바의 침공을 비판하기 위해 UN 헌장과 주권 원칙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번에 브리질에서 다른 나라 외교관들은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정치적 보호와 수십억 달러 상당의 폭탄과 군사 장비를 제공한 가자지구 전쟁을 비판하기 위해 동일한 원칙을 적용했다. 남아공 대표는 “우리가 유엔 헌장에 명시된 원칙에 단결했다면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3개월 이상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블링컨 장관은 기자브리핑에서 가자지구 즉각적인 휴전에 대한 강한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G20이 분쟁의 목표에 있어서는 대체로 단결된 것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가 인질 합의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 모두가 인도주의적 휴전 연장을 지지한다. 모두가 갈등을 끝낼 방법을 찾는 것을 지지한다”면서 “전술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실제로 결과를 얻는 데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워싱턴의 세계적 위상이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말했다.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다자 문제 전문가인 리차드 고완은 “1년 전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두고 러시아를 뒷전으로 밀었다”면서 “이제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의 사건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11월 선거에서도 영향력을 잃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최근 선출된 친이스라엘 성향의 아르헨티나 대표 발언을 통해 겨우 지지를 얻었다. 아르헨티나 대표는 이번 분쟁이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고 ‘무조건 인질 석방’을 요구해 미국과 보조를 맞췄다. 그러나 이는 소수 의견이며 대부분 국가들은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특히 G20 주최국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G20 외교장관 회의가 열리기 며칠 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학살에 비유하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에 대해 룰라 대통령이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해치려 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편 미국 정보 당국자들은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의 능력을 크게 저하시켰다고 밝혔지만 가자지구 보건부 수치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7일 전쟁 발발 후 100일 이상이 지났고 거의 3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후에도 하마스를 제거하는 데는 가까워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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