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을 공공의 적으로 만든 ‘홍콩H지수 연동 주가연계증권’(홍콩ELS) 손실에 대한 이른바 ‘자율배상’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의 경우 상당수 투자자와 합의를 통해 금전적 보전도 이뤄졌다.

이번 사태와 관련 “금융회사가 투자자에게 배상한다”는 말이 지배적으로 쓰이고 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용어의 적절성과 그 말에 담긴 현 금융환경의 후진성 문제다. 언제가부터 금융당국과 언론은 물론 금융회사도 스스로 배상이라고 말한다. 배상은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를 금전을 통해 원상복구해주는 법적조치의 일환이다. ‘자율’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은행 등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번 사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던 지난해 말 은행권은 불법행위는 물론 불완전 판매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했다. 투자상품인 홍콩ELS 판매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배상에 나설 경우 ‘배임’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다만 판매 과정에서 일부 직원의 불완전판매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손실은 일부 보전할 수 있다”는 정도의 입장이었다.

그랬던 은행권이 스스로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셈이 되는 배상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상이라는 용어가 맞지만, 금감원에서 배상이라고 쓰면서 고민 끝에 배상으로 수정했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배상이 가지는 법적 의미를 모르지 않고, 이에 따른 책임 문제도 뒤따를 수 있는 데도 용어를 사용한 배경의 한면을 토로한 것이다.

실제 금감원이 올해 2월 내놓은 ‘홍콩ELS 관련한 피해구제 방식과 관련한 입장’이라는 보도자료에 따르면, 투자자는 피해자가 되고 이들은 구제와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돼 있다. 당연히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는 법. 은행이다. 그리고 피해구제를 위한 방법으로 배상의 기준과 범위 등이 장황하게 뒤따라 나온다.

여기서 용어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은행이 저지른 불법행위가 있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 60%가 아니라 100% 배상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거꾸로 은행은 전혀 잘못이 없고 투자자의 전적인 책임이 명확한 경우는 더 많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를 대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관치금융과 은행권의 ‘권력과 당국에 알아서 기는’ 행태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 금융투자 환경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주 이복현 금감원장이 일부 금융지주 회장 및 은행장과 한국 금융시장을 알리기 위해 미국에 간다. 당국의 주장대로면 여기에 동행하는 인사중 상당수는 홍콩ELS 상품을 대량으로 불법판매한 책임자이기도 하다. 미국에 가서 한국 금융시장의 어떤 점을 홍보할지 모르겠지만 관치의 그림자를 치우는 게 우선 아닐까 싶다.

백만호 재정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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