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5월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들이 과거 첫 행선지로 미군기지를 방문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방문 다음날에 채택된 한미 정상 공동선언문에는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기술 등에 대한 기술협력 문구가 빼곡히 채워졌다. 기술이 정상외교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외교, 안보와 연결되는 과학기술정책

지난 30년 동안 각국 정부는 경제적 목적에서 과학기술혁신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이 외교 안보와 연계되면서 그 목적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발표한 ‘OECD STI(사이언스, 테크놀로지, 이노베이션) Outlook 2023 보고서’는 지정학적 갈등으로 전세계적으로 과학기술정책 의제가 안보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첨단기술에서 중국의 부상으로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고 과학기술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되어 기술주권, 전략적 자율성프레임이 강조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일본 연구개발전략센터(CRDS)가 올 3월 발표한 보고서에도 각국 정부가 과학기술정책을 국가안보 산업 외교 정책과 연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등장한 미국의 반도체과학법, 일본의 경제안전보장법, 유럽연합(EU)의 경제안보전략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과학기술정책의 목표를 경제발전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기본법 산업기술혁신촉진법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법률도 국가의 경쟁력강화와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최근 과학기술정책에서 안보가 강조되고 있다. 2022년 제정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은 첨단전략산업의 기술역량을 강화해 국가 또는 경제 안보를 확보하고자 한다.

2023년 제정된 국가전략기술특별법 또한 국가전략기술의 육성을 통해 과학기술주권 확립과 국가안전보장을 지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2월 제정된 산업재산이용촉진법은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미공개 특허정보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외교정책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도 커졌다. 2021년 6월 정부는 과학기술외교 강화를 위해 과학기술외교정책, 데이터·정보통신·인공지능 우주 탄소중립 등 4개 분과로 구성된 과학기술외교자문회의를 출범시켰다. 또한 2021년 10월 과학기술외교대사를 임명하고 재외 공관에는 현지 과학기술자 행정원 채용을 추진하는 등 외교와 과학기술의 접목 노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시대적 흐름에 맞게 과학기술정책 추진체계 살펴봐야

이러한 노력들이 실제 작동하고 힘을 받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정책 추진체계

개편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과학기술정책은 여러 부처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정책을 연계하고 통합하기 위한 과학기술기본법 연구개발혁신법 과학기술혁신본부 등이 있으나 부처간 칸막이는 여전하다. 여기에 더해 과학기술 외교 안보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은 이보다 훨씬 높다.

경제와 안보에 대한 균형적 시각을 가지고 과학기술 외교 안보정책을 통합적 관점에서 조정하고 결정할 추진체계가 필요하다. 대외경제장관회의 과학기술장관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 별도로 운영하던 협의체 구성원과 기능을 조정하고 상호간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과학기술 프로젝트에 경제적 타당성뿐 아니라 안보 관점을 반영하도록 별도트랙을 만들고 하향식(top-down) 전략기술을 개발하는 체제도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술인텔리전스, 전략기술도출 등 안보관점의 과학기술정책을 지원하는 전문기관 설립도 검토해 볼 수 있다. 기술이 안보와 외교의 핵심요소로 떠오르는 기정학(techpolitics)시대를 슬기롭게 헤쳐갈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기대해본다.

김용래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전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