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총괄위원회는 5월 31일에 11차 전기본 실무안(2024~2038년)을 정부에 전달했다. 이 안에 따르면 2038년 국내 최대 전력수요는 129.3GW(기가와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적정 예비율 22%를 적용하면 2038년까지 필요한 발전설비 용량은 157.8GW가 된다. 참고로 한국형 대형원전 ‘APR-1400’ 1기당 발전량을 1.4GW라 치면 157.8GW는 원전 112.7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10차 전기본에 따라 2038년까지 확정된 설비용량은 147.2GW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10.6GW 규모의 신규 발전설비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우선 주목되는 부분은 추가로 필요한 10.6GW를 채우기 위한 방법이다. 총괄위원회안은 2031~2032년간에 필요한 2.5GW를 LNG를 활용한 열병합 발전으로 충당하고, 2.2GW의 신규 발전설비가 필요한 2035~2036년에는 한국형 소형모듈원전(SMR)에 0.7GW를 배정했다. 아울러 4.4GW의 신규설비가 필요한 2037~2038년에 대해서는 일반 대형원전 3기를 건설하는 방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원전 건설에 14년 내외의 기간이 걸리는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원전 확대에만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다는 점, 10차 전기본에서 대폭 감축한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그대로 수용한 점, 개발 중인 미완성의 소형모듈원전을 국가계획에 포함해서 미래 전력수급의 불확실성을 키운 점 등이 지적되었다.

탄소중립 대응 못하면 수출경제 큰 타격

문재인정부에서 발표했던 국가온실가스감축(NDC) 목표치 30.2%는 10차 전기본에서 21.6%로 감축되었고 그만큼 원전으로 대체되었는데 11차에서도 조정되지 않았다. 또 한국형 소형모듈 원전은 2028년에 표준설계인가를 취득한다는 목표로 한국수력원자력이 참여해서 개발중인 기술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대체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반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없이는 무역 기술장벽이 되고 있는 ‘RE100’ 압박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필두로 탄소규제에 나서고 있다. 제품별로 탄소배출량이 기준치를 초과하면 추가 관세를 물어야 한다.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굳이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논하지 않더라도 제조업 중심의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국내 산업이 배출하는 탄소의 39% 정도를 차지한다는 철강업계가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기후생태위기가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이에 대한 논쟁은 종결됐으며 어떻게 대처할까만이 남은 문제다. 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6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연속으로 역대 가장 더운 달이 12개월 유지됐으며, 같은 기간에 산업화 이전에 대비해서 지구의 평균기온은 1.63℃ 높았다고 한다. 이미 되돌아가기 어려운 경계선으로 여겨지는 1.5℃를 넘어섰다. 비록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기는 하지만 탈화석연료가 기후생태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치라는 점에 대해서 이견을 달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의 정치·정책 영역이나 경영계의 통념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전환이 기후생태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디지털전환이 생태위기를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도 만연해 있다.

그런데 전력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는 원인을 생각해 보면 현실은 다르게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5.30)에 따르면 미국 전력발전회사인 알리안트에너지는 2025년으로 예정된 석탄발전소의 퇴출을 2028년으로 연기했으며, 오하이오주의 퍼스트에너지사는 ‘2030년 탈석탄’ 목표를 폐기했다. 2030년까지 가동을 중단하기로 한 석탄발전소의 총규모는 2023년 6월에 비해 2024년 5월에는 40% 정도 줄었다.

석탄발전소의 퇴출이 미루어지는 원인이 바로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하는 디지털 산업의 전력수요다. 특히 AI용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다. 5월 21일 국회입법조사처는 향후 5년간 새로 지어질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려면 원전 53기가 추가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디지털전환 빠르고 기후위기 대응 둔감

디지털전환이 생태위기에 저절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특히 한국은 디지털전환이 지나치게 빠르고 생태위기 해결책에는 지나치게 둔감해서 양자간 충돌이 심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 두 문제간의 충돌을 조절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보이는 국가들이 있다. 디지털전환이 생태위기문제와 충돌하지 않도록 조절해 나가는 것은 생존의 문제다. 국가적 기획이라도 필요하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