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높은 경제적 잠재력이 장점 … “한국은 소프트파워 부문 협력 강화해야”

베트남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0일 하노이 주석궁에서 또 럼 베트남 국가주석과 나란히 손을 흔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 기간에 베트남 권력 서열 1~4위를 모두 만났다. 하노이 AFP=연합뉴스
한국의 3대 교역 파트너인 베트남에 대한 미국, 중국, 러시아의 구애가 심상치 않다. 베트남은 2022년 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동남아시아의 후발 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처음으로 필리핀의 GDP를 추월했다. 2023년 세계 경제 불황으로 5%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다른 개발도상국의 성장률과 비교하면 낮은 성장률은 아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24년 수출과 해외직접투자(FDI)가 베트남의 성장 동력으로 기능하면서 베트남이 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탈세계화, 그린 전환, 디지털 전환이라는 글로벌 경제의 변혁기에도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제조 강국이자 글로벌 공급망의 주요 허브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베트남 무기 60~70%는 러시아산 = 2024년 6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베트남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월 5선 대통령에 재선된 이후 처음으로 방문한 국가 중의 하나가 베트남이라는 사실은 베트남에 대한 러시아의 협력 의지를 드러낸다.

베트남과 러시아는 1950년 수교 이전부터 인연이 깊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아이 2세(1868~1918)가 왕세자 시절이던 1891년에 베트남을 방문했었고, 호치민 주석의 베트남 정부가 외교 관계를 최초로 수립한 국가 중 하나도 러시아(구소련)였다.

응웬푸쫑 베트남 공산당 총비서와 공산당 중진들 가운데도 러시아 유학파 출신이 다수다. 또한 베트남이 프랑스와 미국과 전쟁할 때도 러시아(구소련)은 베트남을 지원했다. 그리고 1978년 베트남이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정권을 몰아내기 위한 전쟁을 치르면서 중국과 대립할 때도 소련은 베트남을 지원했다.

베트남 군사 문제를 연구하는 응웬더풍 박사(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에 따르면 베트남 국방 무기고의 약 60~70%가 러시아 장비라고 한다. 이 같은 역사적 연유로 베트남은 유럽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러시아와의 유대를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2024년은 양국이 ‘우호관계 기본원칙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1978년에 수립한 우호조약을 대체하기 위해 1994년에 다시 서명했고, 양국은 상대방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다른 당사자와 어떠한 협정도 맺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현대의 양국 관계는 이 조약의 범위 내에서 관리되고 있으며, 2001년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넘어 2012년에는 베트남의 최상위 양자 관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로 격상되었다.

◆러시아의 동남아 교두보는 베트남 = 이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가 증가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베트남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파트너로 여전히 여긴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러시아는 최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고 불리는 개발도상국가와의 교류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자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러시아는 동남아시아 국가 포섭의 교두보로 베트남을 삼은 것으로 판단된다. 베트남은 이점을 활용하여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 견제 모멘텀을 얻고자 할 것이다.

실제로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러시아와 베트남은 남중국해의 석유 및 가스 탐사를 계속하기로 하였다. 러시아 기업인 자루베즈네프트(Zarubezhneft)와 가즈프롬(Gazprom)은 베트남 석유 탐사 프로젝트에 이미 참여하고 있고 새로운 탐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또한 또 럼(To Lam) 베트남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체결한 11개의 양해각서 가운데 에너지 협력에 대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과학기술부와 러시아 로사톰 원자력그룹(Rosatom Atomic Energy Group)은 베트남 내에 원자력과학기술센터 설립사업 시행을 위한 로드맵을 포함한 원자력 산업 분야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베트남이 반도체, AI, 전기차 등 전력 수요가 큰 산업으로 경제구조를 전환하려 한다는 점에서 전력공급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노력으로 여겨진다.

◆“베트남과 미·중·러 이해관계 일치” = 한편 이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은 작년 9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그해 12월 중국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문에 이어서 개최되었다. 응웬푸쫑 베트남 공산당 총비서는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이후 미국, 호주, 일본과도 양국 관계를 최상위 양자 관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로 격상했다. 그해 12월 시진핑 중국주석도 베트남을 방문하여 양국 관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를 넘어 ‘운명공동체’에 이르렀음을 강조했다.

글로벌 패권을 행사하는 세계 3대 강국이 1년 사이에 모두 베트남을 방문한 점은 인상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중 패권 경쟁을 포함한 어떠한 국제 분쟁에도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 베트남의 외교 원칙인 ‘대나무 외교’의 성과라고만 단정 지을 수 없을 것 같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베트남과 미국, 중국, 러시아 3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이해된다.

강건한 경제 성장세와 더불어 베트남의 지정학적 위치는 미국, 중국, 러시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했고 동남아시아 지역과의 파트너십을 재구축하고 싶어 한다. 미국에 있어서 베트남은 중국과 접해있고 중국의 태평양 진출 경로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협력 파트너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베트남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갈등하고 있다는 점도미국 입장에서 베트남을 간과할 수 없는 파트너 후보로 삼게 한다.

◆베트남, 미·중과 모두 긴밀한 관계 = 베트남 입장에서도 미국은 영토 주권 수호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파트너로 여겨진다. 또한 베트남은 2022년 미국에 대해 수출 1275억 달러, 수입 114억 달러로 대미 무역흑자 1161억 달러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전년보다 그 규모가 조금 줄었지만 1040억 달러를 얻었다. 미국과의 교역은 베트남 경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공산당 정권의 안위를 위해 인권을 개선하고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기를 바라는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알고 있다.

미국은 푸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대해 “침략 전쟁을 조정하거나 잔학행위를 정상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서는 안된다”고 평가했지만, 대니얼 J. 크리튼브링크(Daniel Kritenbrink)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베트남의 주권을 수호하고 이해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어떤 방식이 최선인지 결정하는 것은 베트남만이 할 수 있다, 우리는 미국-베트남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다고 믿고 있다”고 밝히면서 베트남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유보했다.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무역파트너로서 베트남 총교역액의 25%를 차지한다. 2023년 베트남은 중국에 대해 612억 달러를 수출했고, 1106억 달러를 수입하여 1712억 달러의 교역액을 기록했다. 경제성장 동력으로서 중국과 거리를 두기 어렵다.

또한 중국은 베트남과 같이 공산당이 집권하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베트남의 정권유지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다만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영토 주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필리핀의 스프래틀리 군도 세컨드 토마스 암초로의 보급 작전에 대해서는 완강한 자세를 취하는 반면에, 베트남의 스프래틀린 군도에서의 섬 매립 활동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사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한-베, 새로운 협력분야 발굴해야 = 베트남은 미국에는 경제와 영토 주권을, 중국에는 경제와 정권 안보를, 러시아에도 정권 안보와 영토 주권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대나무 외교’라는 외교 원칙 하에서 자국에 필요한 점을 이들 국가로부터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경제 협력에만 의존한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미국, 중국, 러시아와 베트남 간 양자관계에 비해 우선순위가 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이 지점에서 하게 된다. 한국과 베트남이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로 격상하고 협력의 폭을 확대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앞서 살펴본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 대한 베트남의 안보 수요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남중국해에 대한 원론적인 지지 의사를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독도에 대한 지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에 대한 베트남의 안보 수요를 한국이 제공하기 어렵다면, 협력의 차원을 확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양국 간 경제협력은 하드웨어 부문의 성장에 집중했으므로, 여태껏 간과된 ‘소프트파워’ 부문의 협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고려할 수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가 세 가지 차원 중 두 가지 차원의 협력만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한국은 소프트파워 부문을 포함한 네 가지 차원 가운데 세 가지 차원으로 협력 범주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 간 교역 목표를 2030년 1500억 달러로 설정한 만큼 양국은 새로운 협력 분야를 발굴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국제사회에 자리매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2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