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도체특별법을 발의했다. 반도체 산업에 100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투자세액 공제율을 높이자는 것이 골자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반도체 기술에 대한 종합투자세액 공제율이 대기업 25%, 중소기업 35%로 각각 10%p 오른다. 연구개발 세액공제도 대기업 40%, 중소기업 50%로 10%p 상승한다. 반도체 기업의 시설투자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의 일몰기한도 올해 말에서 10년 더 연장된다.

민주당으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법안이다. 민주당이 법인세 인하나 대기업 세액공제율 상향에 대체로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온 것과는 결이 다르다.

여야 진영 가리지 않고 반도체 지원 한목소리

그 다음날에는 정부가 경제장관회의를 거쳐 반도체 생태계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지난 5월 경제이슈점검회의를 통해 발표한 26조원 규모 지원대책의 후속대책이다. 반도체 투자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한 17조원 규모의 저리대출 프로그램을 가동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이 저리대출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반도체 산업단지의 전력과 용수 등 각종 인프라시설을 구축하는 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뛰겠다고 한다. 게다가 평소 반도체와 인연이 없던 강원도에서도 반도체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나선다. 마치 정부와 야당, 지방자치단체가 반도체산업 지원경쟁을 벌이는 듯하다.

사실 미국이나 일본, 대만 등 경쟁국가들이 반도체 산업에 거액의 보조금을 살포하는 등 뜨거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니 한국도 지금 우물쭈물해서는 안되는 것이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모두가 발벗고 나서는 것은 이런 정세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해당 산업계와 기업들이 응답할 차례다. 정부와 국민이 아무리 지원한다고 해도 업계 스스로가 노력하지 않으면 허사다.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체질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없는지 돌아보고, 있다면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이를테면 계열사와 사업을 무분별하게 확장하고 이로 말미암아 부채가 늘어난다면 반도체산업의 역량이 잠식되기 쉽다. 아무리 금융세제 지원을 퍼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런 방만한 사업은 그대로 끌고가서는 안된다. 아울러 반도체에 제공되는 금융세제 지원은 다른 업종이나 시민들의 불편과 불이익을 동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SK그룹이 일단 화답하고 나섰다. SK그룹은 지난달 28~29일 경영전략회의를 진행한 끝에 ‘반도체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AI·반도체 밸류체인에 관련된 계열사 사이의 시너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5년간 총 103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HBM 등 AI 관련 사업분야에 82조원이 투자된다. 특히 운영개선을 통해 3년 동안 30조원의 잉여현금 흐름을 만들고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관리한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SK하이닉스는 요즘 인공지능에 필요한 HBM반도체 개발과 생산에 앞서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주가도 상승세를 타는 등 호시절이다. 그렇지만 주도권을 다시 상실하지 않으려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기에 SK의 이번 결정은 매우 상서롭다.

오히려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걱정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D램가격이 회복돼서 실적은 크게 살아났지만 경쟁력에서 자칫 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눈길이다. HBM 주도권을 빼앗기고 이를 아직 만회하지 못한 것은 이런 걱정을 뒷받침한다. 반도체 부문 수장도 교체했지만, 아직까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또 처음으로 노조 파업을 겪으면서 아직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하루 빨리 난제들을 해결하고 본디 실력을 보여주기를 모든 전문가와 국민은 고대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체질 개선은 선택 아닌 의무

요즘 반도체 산업 종사자들은 전례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반도체 지원에 관한 한 정파를 가리지 않고 ‘한마음 한뜻’이기 때문이다. 여야의 구분이 없을 뿐더러 이른바 진영 사이의 갈등도 일어나지 않는다.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에 총의가 모아진 것은 과거에 없었던 일이라고 여겨진다. 마치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를 온국민이 응원하는 것과 흡사하다.

모처럼 조성된 이런 고무적인 분위기를 반도체 기업들은 잘 살려가야 한다. 한눈 팔지 말고 체질개선을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