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집단소송 앞둔 징용 피해자들 반발

미쓰비시 군수시설 유네스코 등재추진

태평양전쟁 기간 전범기업이 운영했던 강제징용시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피해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중이어서 국제적 논란도 예상된다.

2일 일제피해자공제조합과 근로정신대시민모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등 시민단체는 "조선인 징용시설 등이 포함된 산업유산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은 국제사회가 인류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지 의문"이라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이어지자 일본이 해당 시설을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미쓰비시가 조선인을 강제동원해 탄광을 운영한 섬 하시마. 군함을 닮아 군함도라 불린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 논의가 활발하던 때 유네스코 측과 물밑 작업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2012년부터 전범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진행해왔다. 2012년 우리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해 손해배상의 길을 텄다.

이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들 1500여명은 청구 시효가 만료되는 5월 23일 이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키로 하고 막바지 작업 중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한국유족회는 "지금까지 강제징용 피해 사례와 관련한 1400부 이상의 신청서가 접수됐다"며 "이 중 법적 요건을 갖춘 사례를 추려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소송 대상 일본 기업은 미쓰비시와 미쓰이, 아소, 닛산 등 100여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의 눈을 피해 강제징용 시설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왔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월 나가사키 항에서 18㎞ 떨어진 작은 섬 하시마(사진) 등 28곳을 일본 산업혁명의 유산이라며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요청했다. 하시마는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사들인 섬으로, 태평양 전쟁 시기 전쟁 물자 조달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징용해 탄광을 운영했던 곳이다. 이곳에 징집된 조선인 122명은 목숨을 잃었다.

일본이 요청한 곳에는 하시마 뿐 아니라 나가사키 조선소 등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이 대부분 포함됐다. 유네스코는 일본 신청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시마 섬 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는 오는 6월 열리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총회에서 결정된다.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이상근 공동대표는 "아베 정부가 진두에 나섰고,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는 심사위원들에 의해 등재 추진이 유력해졌다"며 "유네스코가 일본의 자금을 앞세운 로비에 무너진다면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선은 사라지고 약육강식의 정글사회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옥섬' 하시마는

일본 나가사키(長崎) 항에서 18㎞ 떨어진 하시마는 남북 480m, 동서 160m, 면적 6.3㏊(헥타르)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19세기 후반 미쓰비시가 탄광 개발을 본격 시작했다.

이 섬에는 탄광 노동자들이 생활하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아파트가 생겼고, 이는 일본 최초의 근대 집단 거주시설로 평가된다.

하지만 탄광 노동자들 대부분이 강제징용자로 밝혀졌고, 조선인 122명이 이 섬에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석탄 산업이 쇠퇴하면서 이 섬에 살던 주민들은 모두 떠나 '유령섬'으로 남았다.

당시 해저탄광은 지하 1000m 이상에 달해 채탄 작업을 하다 보면 바닷물이 갱내로 비처럼 쏟아지던 곳이다. 탄광 안에는 메탄 등 가스가 다량 응축돼 있어 '가스돌출' 현상이 자주 일어났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가스돌출 위험이 있는 구역을 꺼렸고, 이런 곳에는 조선인과 중국인이 투입됐다.

하시마는 외부와 철저히 격리돼 '감옥섬'이라 불렸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는 "조사 결과 하시마에서 조선인이 사망한 1차 원인은 강제동원이며 2차 원인은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음이 확인됐다"면서 "일본 정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이런 사실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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