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업체명 공개해야" … 사법기관 초기 대응 필요

미국 PPA(Pacefic Property Assets)사의 CEO인 마이클 스튜어트는 2007년 부동산 경기침체 이후 폰지 사기를 벌였다.

폰지 사기는 신규 투자금을 받아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금 등을 주는 소위 '돌려막기'다. 유사수신업체들의 전형적인 사기수법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를 벌였고 검찰은 1억6900만달러 규모의 사기혐의로 이들을 기소했다. 스튜어트는 징역 220년을 선고받았다.

미국의 폰지사기방지 전문 웹사이트인 폰지트랙커에 따르면 2013년 미국 법원은 폰지형 사기영업행위를 벌인 117명에 대해 1000년(합산)이 넘는 징역형을 선고했다. 1인당 평균 8.5년을 선고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1월 FX마진거래로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금 672억원을 가로친 유사수신업체 IDS홀딩스 대표 김 모씨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씨가 피해자들에게 피해액 대부분을 변제했고 피해자들도 김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다.

무등록 대부업체서 나온 현금 |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2월 22일부터 불법대부업·유사수신·불법다단계 근절을 위한 '불법사금융 100일 특별단속'을 펼쳐 99건을 적발, 308명을 검거했다. 지난 5월 경기남부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적발한 서울 송파구의 무등록 대부업체에서 나온 현금. 연합뉴스


◆유사수신 법정형 '징역 5년 이하' = 김씨 사건에서 법원이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범죄에 대한 법정형이 낮기 때문이다.

김씨는 유사수신혐의 외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사기죄로 기소됐다. 검찰은 유사수신행위에 대해 통상 두 가지 혐의를 함께 적용한다. 법원이 피해액 변제를 인정해 형량을 낮춘 것은 주로 특경가법상 사기죄 때문이다.

특경가법상 사기죄의 법정형은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이다.

법원은 김씨가 피해액을 변제하고 손해가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유리한 양형 참작 요소로 판단했다.

하지만 유사수신행위에 대한 법정형이 높았다면 피해액과 상관없이 김씨의 행위만으로 중형 선고가 가능했을 것이다.

유사수신행위 법정형은 징역 5년 이하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무등록 방문판매업도 법정형이 징역 7년 이하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형인 것과 비교하면 처벌 수위가 낮은 것이다.

문상일 인천대 법대 교수는 "유사수신행위 처벌수위는 피해규모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할 때 적정한 형벌규정으로 보기 어렵다"며 "금융사기범죄라는 점에 초점을 둬서 특경가법상 사기죄와 균형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상향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범죄행위를 유인하는 경제적 요인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반복적인 범죄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범죄로 취득한 모든 경제적 이익을 박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유사수신으로 막대한 규모의 투자금을 가로채도 처벌조항이 약하기 때문에 사기범들은 유죄를 받더라도 다시 같은 유형의 범죄를 저지른다"며 "수사와 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벌조항에 콧방귀를 뀌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담수사기관 설치 필요성 대두 = 금융당국은 현재 전국적으로 900~1000개 가량의 유사수신업체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요즘이 유사수신업체가 가장 창궐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사 인력 부족으로 금감원도 한해 100개 업체 정도만 수사기관에 통보하는 실정이다. 그마저도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처벌까지 진행되기 어렵다.

금융감독원 조사와 경찰·검찰 수사를 거쳐 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유사수신업체는 그동안 영업을 계속하고 피해자들은 계속 늘어난다.

이같은 현실을 고려해 금감원이 유사수신업체를 수사기관에 통보하는 시점에 업체 이름을 외부에 공개할 수 있도록 법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고수익을 보장하는 사기행각이 벌어지고 있는데 해당 업체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체명을 공개하지 않으면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를 사실상 방관하는 것"이라며 "금융사기범죄의 특수성을 인정해 공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수신업체는 주로 금감원에서 1차적인 조사가 이뤄지지만 강제권이 없는 금감원 조사에는 한계가 있다. 제도권 내에서 활동하는 업체들이 아니기 때문에 조사에 비협조적이고 자료를 제출받을 수 있는 권한도 없다.

문 교수는 "유사금융사기범죄의 특성을 갖는 불법 피라미드식 금융사기범죄는 대부분 그 수법이 지능적이고 전문적이고 은밀하게 진행되는 속성을 가진 범죄"라며 "수사기관이 정확한 피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전문적인 금융사기 전담팀을 구성하고 전문 수사인력을 확대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채진 홍익대 법대 교수도 "금융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금융감독기관과 수사기관 각각에게 부족한 권한 및 능력을 보충하는 것"이라며 "기관간 인력자원과 각자 축적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특별기구를 설치·운영할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추상적 위험범'으로 처벌해야 = 수사기관이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하기 이전에 유사수신행위를 사기죄로 적극 단속하기 위해서는 '추상적 위험범'의 범위를 사기죄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위험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행위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실적인 재산피해가 발생하기 이전 단계에 사기죄를 적용하는 것이다.

독일은 1976년 형법개정을 통해 사기죄의 외연을 확대했다. 특별사기죄를 신설해 △보조금사기 △투자사기 △신용사기죄 등을 마련했다. 이들 범죄는 모두 추상적 위험범으로 규정했다.

투자사기의 경우 '투자증대 결정에 대한 중요한 상황에 관해 (투자자에게) 유리한 허위의 진술을 하거나 불리한 사실을 은폐한자는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상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유사수신의 피해가 곪을 때로 곪아서 수사와 기소가 이뤄지고 의미없는 승소판결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사기죄를 추상적 위험범으로 이해해 사법기관이 초기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후적인 제재로는 유효한 대처를 할 수 없다"며 "의심스런 업체를 조기에 발견하고 신속한 경고나 개선명령·업무정지, 해산 등의 처분을 하는 등 가능한 한 모든 민사상·행정상의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수익 좇아 불법 유사수신에 몰린다'연재기사]
- ①│ VIK·IDS(유사수신혐의 업체들)·엠페이스, 수사·재판중 수천억 모집혐의 2016-07-14
- ②│ "투자하면 가만 있어도 월 1억원 수익" 2016-07-18
- ③│ 금융사기업체 1천여곳 영업, 처벌규정 '콧방귀'2016-07-21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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