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존중' 교육교실-취업 지원 활성화 필요 … "당사자-공공기관-기업 네트워크 도움"

한국사회는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환경을 갖고 있다. 초등 어린시절, 중고등 청소년시기에 자신의 장점을 키우고 성장할 기회는 얻지 못한다. 특히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정서행동 문제, 가정위기, 경계선, 가정밖 생활을 겪는 경우 등 느린학습자들에게는 성장의 기회는 그림 속 떡과 같다. 어렵게 보낸 성장시기의 기회 불평등은 사회 진출 연령에 들어서서는 취업 등 자립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1월 27일 서울시에 따르면 경계선 지능인은 인구의 약 13.59%에 이른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서울시만 약 132만명, 유치-초-중-고등학생은 12만명으로 추정된다. 또 사회적 편견으로 등록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발달장애인이 최대 175만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상대를 짓밟는 경쟁사회에서 온전한 교육과 자립 기회를 얻기 힘들다.
최근 느린학습자의 자립-취업지원 방안에 대해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토론이 있었다. 그 내용을 공유한다.

느린학습자 대안학교인 성장학교별에서 그림수업 중인 청소년과 청년들. 사진 성장학교별 제공


#. 어린시절 놀이공원에서 공연하는 소리, 자동차 세차소리, 소 울음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해 울곤 했던 정현규씨. 초등시절에는 언어치료센터에 다니며 상황에 맞게 말하기 수업을 받았다.

선생님으로부터 자유분방하게 행동한다거나 산만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급우로부터는 장애인 소리를 듣고 차별과 놀림을 당했다. 중학생 때는 온갖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수업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병원에서 자폐성 장애3급 판정을 받았다.

정씨는 대학생활에서 과제와 논문 작성, 시험 준비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졸업 후 취업에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했다. 코로나 기간에는 집에 틀어박혀 다른 사람과 소통도 거의 없이 지냈다.

그는 '성장학교별'을 다니면서부터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키웠다. 성장학교별은 경계선 청소년 청년 등 느린학습자의 성장과 자립을 지원한다. 1년 반 성장학교별 활동을 하면서 '관심분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놀랄만큼 세부적인 것을 잘 알고 기억한다'는 장점을 확인했다.

미술수업에서 그린 그림도 독특하다고 칭찬받는다. 연극수업을 하면서 연기에도 관심이 생겼다. 쿠키 비누 석고 방향제 제작 아르바이트도 했다. 다만 그는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남의 말을 그냥 믿고 거절을 못해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부모는 걱정이다.

정씨는 2월 24일 '느린학습자의 신경다양성을 통한 자립지원 방안' 국회심포지엄에서 자신을 '경계청년 당사자'라 소개했다. 정씨는 "경계청년들은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지만 언제가는 자립해야 하는 날이 온다"며 "안정적인 취업을 위해 경계청년취업지원센터를 설치해 경계청년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진로와 직업 훈련, 실습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7월 오티즘엑스포에서 뉴다이브의 가상현실 메타버스를 시연하는 모습. 사진 뉴다이브 제공


◆다른 시각을 가진 인재로 바라봐야 = 안은비 성장학교별 대표교사는 같은 날 느린 학습자를 위한 자립지원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갖춰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느린학습자들은 면접과정에서 자주 많이 탈락하곤 한다. 소통이라는 어려움이 크고 실패를 한번 경험하면 자신감이 떨어져 긴장하게 되고 평소보다 잘 보지 못하는 결과를 보이곤 한다. "자신은 사랑받을 수 없으며, 언제나 남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다"는 수치심과 두려움이 커지고 고립돼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안 대표교사는 느린학습자의 이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우선 느린학습자의 장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점 발굴 육성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당사자의 장점이 서류와 면접에서도 전달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립 지원이 강조된다. 취업에 가장 필요한 역량은 느린학습자의 의사소통 역량과 협동 역량이다. 기업에서 동료들과 소통하고 협동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것. 더불어 생활 경제, 일상생활 기술도 진행한다.

구직 지원으로 강점을 기초한 서류면접과 경력, 계획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준비한다. 당사자와 기업을 연결해주는 '신경다양성 커리어 커넥터'(NDCC) 같은 해외 사례처럼 구직포털 혹은 장치가 필요하다.

기업적응 지원도 필요하다. 기업과 직원 동료가 느린학습자를 이해하는 교육과 환경을 갖춰야 한다. 느린학습자를 지원하는 멘토와 매니저 배치도 필요하다.

안 대표교사는 "우리는 그들이 '나의 독특함이 강점이고 나는 인재'라는 인식개선과 환경이 필요하다"며 "신경다양성 인재를 발굴함으로써 경계성 ADHD 자폐증 난독증이 어려움이 아닌 새로운 시각을 가진 인재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뉴다이브가 개발한 맞춤형 사회성 디지털치료기 인사이더 앱 화면. 사진 뉴다이브 제공


◆장애나 결함 아닌 다양성으로 인정해야 = 느린학습자의 취업을 위해 당사자-부모-공공기관-기업의 협력도 강조됐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들은 성실하고 차분한데 사회성이 부족하고 대인관계에 조금 어려움이 있다. 여러 자격증과 직업 훈련을 받았으나 취업이 되지 않는다. 대학원까지 졸업했는데 면접 통과 자체가 어렵다. 특별한 능력이 있지만 발휘할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며 느린 학습자에 대한 당사자를 포함해 사회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김 교수는 "그들의 다양한 신경성 증상을 약점이 아닌 '독특함'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1990년 후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등장한 '다양한, 심각하지 않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있는' 신경발달 질환, ADHD 자폐성-지적-언어 장애 및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큰 기회를 준 신경다양성 관점에 기반한 주장이다. 신경다양성은 인간의 뇌신경학적 차이를 장애나 결함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다양성으로 인정한다.

이런 관점 위에 국내외 기업들이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청년들을 채용한 사례가 드물지 않다. 국내 기업으로는 IT 소셜벤쳐 테스트웍스, 해외 기업으로는 익셉셔널 마인즈, 오티콘 등이 있다. 이들은 오류 발견이나 패턴 인식 등 IT 업무에 필요한 능력이 뛰어나 특히 데이터 라벨링 작업에 투입되는 사례가 많다. 다이버전트, 스페셜리스테른처럼 이들을 전문가로 키워 고용으로 연결시켜 주는 기업들도 있다.

특히 덴마크 사회적 기업 스페셜 리스테른(Speciallisterne)은 직원의 75%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다. 이들은 공공 및 민간 부문의 소프트웨어 테스팅, 프로그램밍, 데이터 입력과 같은 업무를 다루는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일한다. 아스퍼거 증후군, ADHD 통합운동장애 난독증 등을 가진 사람들도 모집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 고용서비스 사각지대로 존재 = 국내 공공기관의 취업지원은 아직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효성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전 대구본부장은 "경계청년의 경우 현재까지 직업훈련과 고용서비스 제공에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상대적으로 장애가 경미하고 직업적 능력이 있다고 판단돼 정책의 우선 집중 과제가 되지 못하고, 장애인 등록과 교육훈련 문제 등 다각적으로 풀어야 할 지점이 있다"고 밝혔다.

다수의 느린학습자와 경계청년의 경우 장애인 등록을 본인이 하지 않거나 등록을 희망해도 등록증이 나오지 않아 장애인 고용관련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전 본부장은 "서울발달장애인 훈련센터의 자폐성장애인 훈련생이 테스트윅스의 데이터라벨링 직무에 취업한 성공 사례 등이 있다"며 "향후 디지털훈련센터가 전국 17개소로 확대할 계획인데, 잘 설계하면 느린학습자와 경계청년의 직업 진출과 훈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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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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