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처리 사업에 모두 1조800억원 투입

처리 단가는 3만원, 하도급가격은 1만5000원

1순위 낙찰자·하도급자에 금품 요구 정황도

암을 유발하는 석면 사용이 2009년 전면금지된지 16년째다. ‘제3차 석면관리 기본계획(2023~2027년)’에 따르면 정부는 2011년부터 주택 약 32만동, 학교 251만㎡, 군시설 9428동(75.4%)에 사용된 석면의 해체·제거를 추진해왔다. 환경부가 지자체와 함께 주택 슬레이트 철거에 사용한 세금은 1조800억원에 달한다. 올해도 1430억원의 세금이 석면 제거에 사용된다.

하지만 정부 ‘석면 국민격리 정책’의 운용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로 인해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 환경부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슬레이트해체 등을 직접 추진하되 지자체에서 필요한 경우 위탁사업자와 계약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간위탁자는 100% 정부보조금으로 추진하는 사업비 중 8%를 수수료로 받는다. 반면 교육부는 ‘학교석면처리 지원사업’을 민간위탁하지 않는다. 교육부는 8%의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보니 ‘주택 슬레이트처리 지원사업’에서 여러 부정과 비리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다. △무자격자 입찰 참여허용 △하도급 강요 △하도급 업체에 금품요구 △계약이행 방해 △엉터리 면적조사 △형식적 석면폐기물 관리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편집자주

#1 “1급 발암물질 석면이 포함된 슬레이트처리의 경우 법은 하도급을 금지하지만, 현장에선 버젓이 1㎡당 1만2500~1만5000원에 하도급을 한다.” “민간위탁자인 경기대진테크노파크(경기대진)의 한 감독관이 하도급으로 처리할 슬레이트 1㎡당 뒷돈 500원을 달라고 해서 물량에 맞춰 돈을 건넸다. 이는 업계의 관행이다.” - A 모 슬레이트 해체·제거업체 대표(경기 하남)

내일신문이 지난달 25일 취재를 시작하며 경기도 하남에서 만난 A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경기 용인의 한 업체 B 대표는 “1순위 낙찰을 받아 전체 공정이 70%쯤에 이르자 경기대진의 감독관이 하도급으로 넘겨주도록 강압했다”며 “하도급으로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경기대진의 이 감독관은 1순위 낙찰자에게 하도급을 종용한 사실관계 확인에 대해 “하도급 주라고 한 사실도, 돈을 요구해 받은 사실도 없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이권카르텔 의심을 받는 이유는 =25일 업계 등에 따르면 국민세금 100%가 지원되는 슬레이트처리 지원사업이 ‘이권카르텔’로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당초 정부가 내세운 ‘국민의 석면피해 예방’이라는 정책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가 이 사업을 민간위탁사업으로 추진한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권카르텔은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정부는 반 카르텔 정부”라며 “이권을 나눠 먹는 구조”로 정의하면서 공론화됐다.

윤 대통령은 “정부보조금을 나눠먹는 부당이득을 우리 예산에서도 원점(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 낱낱이 걷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2021년 6월 대선 출마 기자회견, 올해 신년사에서 각각 ‘이권카르텔’을 거론했다.

업계는 이 사업을 ‘이권카르텔’이란 우려의 시선으로 본다. 환경부는 2011년 사업초기부터 100% 국고보조금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의 위탁수수료를 8%로 정했다. 환경부는 2011~2016년까지는 지자체에서 직접 수행하거나 한국환경공단에 위탁할 수 있게 했다. 2017년부터는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추진하거나 또는 여러 위탁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게 길을 터줬다.

또 환경부는 이 사업에서 슬레이트 1㎡ 처리단가를 정하지 않고 지자체가 최적단가를 적용하도록 했다. 현장에서는 보통 3만원 내외에서 정해진다.

그 과정에서 시장경제의 자본흐름을 왜곡하는 온갖 부정과 부실이 발생한다는 게 업계 일부의 주장이다. 특히 슬레이트 해체·제거 업자인 안 모씨는 “하도급 단가는 실행가격이다”며 “적어도 이 사업에서 국민 세금 50%가 낭비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석면감리, 그렇다면 환경부는? = 우려하는 ‘이권카르텔’의 시작은 민간위탁에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환경부와 환경공단 일부 퇴직자들은 이 민간위탁 사실을 미리 알고 사업 첫해부터 정부보조금을 취급할 수 있는 단체를 새로 설립하거나, 기존의 몇몇 단체에 들어가 이 사업을 사실상 싹쓸이 하고 있다. 한국석면안전협회(안전협회), 경기대진 등이 대표적인 업체다.

환경부는 2011년 석면관리 종합대책에 맞춰 ‘석면안전관리법’을 제정해 석면감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석면감리는 석면해체 면적이 800㎡ 이상이어야 참여할 수 있다. 주택이 800㎡ 이상인 경우는 손에 꼽는다.

반면 교육부는 50㎡ 이상의 학교석면을 철거해도 석면감리를 배치해 운용한다. 석면감리는 법에 따라 석면해체 현장 및 작업의 적절성, 주민들에 대한 노출 방지 등 법령 준수를 확인하는 등의 업무를 한다. 위반하면 처벌(벌금)한다. 민간위탁자는 슬레이트처리 철거계획 수립, 보조금 집행, 사업의 관리 감독업무 등이다.

그런데 민간위탁자들은 슬레이트처리 현장 관리감독 업무소홀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발주자와의 계약상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 슬레이트처리 작업현장에서 발생하는 법적 책임은 해체제거업자, 운반 및 처리업자들이 진다. 그렇다보니 민법의 비영리단체인 안전협회, 경기대진 등은 민간위탁자에 아주 쉽고 안전하게 오래토록 선정될 수 있다.

한편 안전협회는 장학금과 기부금 등을 명분으로 1순위 낙찰자에게 헌금(?)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다.

광주광역시에서 슬레이트처리 지원사업에 참여한 한 1순위 낙찰자는 “지난해 5월 안전협회 주관으로 나주혁신도시에서 1순위 낙찰자 교육이 있었다”며 “안전협회는 사회공헌한다며 장학금 등 낸다고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우리는 이렇게 좋은 일 한다, 우리는 너희 사장들이 얼마 버는지 다 알고 있다, 너희들도 좋은 일 해야지 않느냐’하면서 돈을 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안전협회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의논한 결과 (내일신문의) 취재에 거부하기로 공식입장을 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내일신문은 안전협회에 제기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질문을 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다. 추가질문은 원천 봉쇄됐다.

안씨는 이에 대해 “안전협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지난 3년간의 장학금 등 사회공헌 기부는 8건에 불과하고 그 액수도 기껏해야 건당 100만~300만원의 소액”이라며 “안전협회는 1순위 낙찰자들이 낸 돈의 규모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전협회는 2017년 사원수 35명으로 276억원의 매출(수임)액을 기록했다. 이는 사원 1인당 7억6000만원을 웃도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 이은주 전 정의당 의원은 2023년 국정감사에서 “(슬레이트처리 지원사업이) 환경공단 출신의 ‘이권카르텔’ 현상을 키워가고 있다”며 “국민 공분을 일으킨 한국토지주택공사 사건과 같은 유사사건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취재가 시작된 후 환경부 관계자는 “이달 말까지 (민간위탁 관련으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조사계획을 수립할 것”이라며 “7월부터 전면 조사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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