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중절’ 등 용어 정비

건보적용·의약품 도입 등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국가가 임신중지권리 보장을 하지 않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등이 침해되고 있다”며 관계부처에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정책 수립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26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낙태’, ‘중절’ 등의 용어를 ‘임신중지’ 또는 ‘임신중단’ 등으로 정비하고,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 적용, 의료종사자 교육,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 중절 수술 허용 한계’·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의 허용한계’ 삭제 등을 권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는 임신중지 의약품을 도입해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하라고 권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8월 한 시민단체로부터 진정을 접수해 조사한 결과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어 진정은 기각하지만, 입법 공백을 우려해 정부에 이런 정책 권고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인권위는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등 국제 인권 규범에서도 임신중지 권리를 여성의 주요 권리로 명시하고 있으나 한국 여성은 임신중지 병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설령 병원을 찾더라도 건강 보험 미적용으로 비용 부담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작위로 인해 건강에 대한 권리 및 자기 결정권을 저해하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남성과 비교할 때 여성에게만 필요한 의료 개입을 거부·방치한 것으로 성별을 이유로 한 평등권도 침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임신중지권은 여성의 자유권·평등권·사회권을 포괄하는 권리”라며 “자기 결정권이 가능해지도록 사회경제적·보건의료적 조건이 제공돼야 하고 국가는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가 관련 형법, 모자보건법에 대한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하면서 입법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

올 8월에는 경찰이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여성 유튜버와 수술을 진행한 병원 원장을 살인혐의로 입건한 바 있다.

9월 28일은 ‘세계 안전한 임신중지의 날’이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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