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선후배로 끈끈했던 두 사람, 정치입문 뒤 충돌 반복

윤-한, 검사동일체 원칙 아래 ‘이해’ 같아서 함께했을 뿐

정치철학 공유하는 김대중-노무현은 ‘존중과 존경’ 관계

한때 윤석열정권의 1인자와 2인자로 함께 했던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끝없이 충돌하고 있다. 검찰에서 ‘화양연화’(인생의 전성기)를 함께 보냈던 두 사람이 정치입문 뒤에는 왜 ‘정적’으로 돌변했을까. 표면적으로는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저격’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지만 정치권과 검찰에서 두 사람을 지켜봤던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두 사람은 검찰식 ‘패거리문화’로 묶여 함께했을 뿐 애당초 철학을 공유하는 ‘정치적 동지’는 아니었다는 진단이다. 검찰에서는 ‘검사동일체’ 원칙 아래 서로의 이해가 맞물려 함께했지만, 현재-미래권력 관계의 모범답안으로 꼽히는 김대중-노무현처럼 서로를 향한 존중과 존경의 마음은 없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훈장 수여식 입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퇴임 이은애 헌법재판관 훈장 수여식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검찰과 윤석열정부 초기까지만 해도 가장 가까운 사이로 꼽혔다. 두 사람은 검찰에서 인생의 굴곡을 함께했다.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검사 선후배로 대형사건을 함께 수사하면서 ‘윤석열사단’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팀에서도 함께했던 두 사람은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하면서 ‘화양연화’를 보냈다.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출세가도를 달릴 때 한 대표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어려운 시기도 공유했다. 조 국 수사로 정권의 공세에 시달렸던 두 사람은 윤석열정권 이후에는 다시 1인자(대통령)와 2인자(법무장관·여당 비대위원장)로 호흡을 맞췄다.

최고위 입장하는 한동훈 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하지만 한 대표가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정치인이 된 뒤 두 사람 관계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 대표의 정치적 행보마다 대통령실이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한 대표의 잇단 독대 요청에 윤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현재권력(윤 대통령)과 미래권력(한 대표)의 충돌로 인해 여권에선 공멸 우려까지 나오기 시작했지만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품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치권과 검찰에서 두 사람을 오랫동안 지켜봤던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윤-한 관계의 파국은 이미 예고됐다고 입을 모은다. 애당초 두 사람은 검찰 특유의 ‘패거리문화’로 엮여 움직였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가 엇갈리면 언제든 등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검찰식 ‘패거리문화’ ‘검사동일체 원칙’으로 묶여 20여년을 함께하면서 서로 밀고 당겼지만, 정치입문 이후에는 현재-미래권력으로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갈등 가능성은 정치인 변신 이후 곳곳에서 감지됐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정치적 리더십’에 의구심을 품었다는 전언이다. 친윤 인사는 29일 “윤 대통령은 정권 초 한 대표를 법무장관 1순위로 검토하지 않았다. ‘(한 대표가) 검사로서 실력은 괜찮지만, 법무장관이란 거대조직의 수장으로서 리더십은 의문’이란 판단이었다”고 전했다. 폭탄주를 앞세운 ‘큰 형님’ 역할에 익숙한 윤 대통령으로선 한 대표의 ‘콜라 리더십’에 우려를 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검찰식 상명하복에 익숙한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부하’ 정도로만 인식했을 수도 있다.

반면 검사 시절 윤 대통령에게 수사와 관련된 조언을 자주했던 한 대표는 최근 측근들에게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에는 조언을 드리면 잘 경청했는데, 대통령이 된 뒤에는 변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모두 ‘검사식 우월감’에 젖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찰식 ‘패거리문화’ ‘검사동일체’로 엮여 잘 지내던 두 사람이 정치권에서 불협화음을 빚는 건 김대중-노무현 전례와 대조된다. 정치권에서 풍파를 겪은 김대중-노무현은 서로를 존경하고 존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에서 “DJ에 대해서는 ‘지도자’로 이름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역사의 인물이 된 김 구 선생을 제외하고는 역대 대통령이나 현존하는 정치인 중에서 내 마음 속 지도자로 생각해 본 사람이 없고 , 나로서는 그 분(DJ)을 특별히 존경하는 셈”이라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오열했던 김 전 대통령은 이후 인터뷰에서 “그가 죽었을 때 내 몸의 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철학을 함께하는 김대중-노무현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품었지만, 검찰 ‘패거리’ ‘검사동일체’로 엮인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서로의 이해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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