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 비상조치의 일상화 …마주보며 달리는 열차”
입법부측 “거부권 예외적 수단 … 탄핵소추권은 행정부 견제수단”
행정부측 “거부권, 유일한 견제장치 … 정파적 탄핵소추 남용 안돼”
무더기 탄핵·거부권 대결 경험, 향후 여소야대 정국서 반복 가능성
“현행 대통령제의 최악 문제점 경험 … 시스템 개선, 정치복원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재의 요구권) 행사와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탄핵권 행사가 일상화되면서 ‘남용’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두 제도를 만들 당시엔 비상상황에 따른 예외적 권한으로 생각했지만 22대 국회 들어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제도보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면서도 과거 정치가 비제도적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던 것을 근거로 ‘정치 복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해법도 제기됐다.
지난달 30일 국회 입법조사처와 한국헌법학회가 ‘권력의 충돌과 헌법적 해결방안’을 주제로 공동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지성우 한국헌법학회장은 “현재 한국 국회와 행정부의 상황을 보면 그동안 헌법현실을 규율하고 지탱해 오던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관행적 규범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제도와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상대방을 최대한 압박하게 되면 민주주의가 위태롭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의 추상적 성격과 회색지대의 존재에 기대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난하게 되면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는 난망하다”고 했다. 정치학 박사인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도 “비상시에 예외적으로만 행사되는 줄로 알고 있던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권과 국회의 탄핵소추권이 빈발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행사된 횟수가 87년 체제이후 최고치이고 계속 갱신 중”이라며 “재의 요구권과 탄핵소추권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들인데 과연 그 취지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대를 부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총동원하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서로 마주하고 맹렬히 달려오는 열차를 보는 것 같기도 하여 위태롭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중 24건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재임기간 12년 동안 45건을 행사한 이승만 전 대통령보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3배 가까이 많은 규모다. 이 전 대통령은 연평균 3.75건, 윤 대통령은 9.6건이다.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제출해놨고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탄핵소추안은 통과시켜 헌법재판소에 보내 놨다. 이상인 방통위원장 직무대행과 김홍일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은 발의 후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자진 철회한 것을 빼면 7건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됐고 5건이 통과시키도 했다.
◆입법부 입장 “탄핵소추 더 이상 예외일 수 없어” = 입법부 관점에서 발제에 나선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답답한 도돌이표 정국의 쳇바퀴 속에는 예외 없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가 있었다”며 “헌법 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 단독입법의 원칙과 국회중심 입법의 원칙의 예외에 해당하는 것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법률안 거부권”이라고 했다. 법률안 거부권을 명시한 조문이 헌법의 제3장 ‘국회’ 편에 들어가 있다는 점을 들어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국회의 입법권과 대등한 위치에 있지 않는 예외적 견제수단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국회가 명백히 위헌적인 법률을 통과시키는 등 국회가 입법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을 통해 입법과정에 참여하지만 법률안 거부권이 남용되면 국회의 입법권이 형해화되고 본질적으로 침해될 수 있다”고 했다.
입법부의 탄핵소추권에 대해서는 “국회가 행정부에 대해 가지는 강력한 권력통제수단”이라며 “탄핵소추권이 더 이상 예외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고 했다.
◆행정부 입장 “24건 거부권 경험, 향후 명분”=전북대 김정현 교수는 행정부의 관점에서 발제에 나섰다. 김 교수는 “앞으로는 과거의 예외였던 현상이 보편적인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빈번해지고 일상적이 될 것”이라며 “대통령 입장에서 유일하게 의회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이 거부권 행사”라고 했다.
이어 “여소야대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미국의 대통령(1988~2023년 총 116건 거부권 행사)처럼 우리나라 대통령도 유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여소야대 국면에서 대통령이 24건의 거부권 행사를 한 역사적 경험은 이후의 대통령들이 여소야대 국면에서 얼마든지 거부권행사를 할 명분을 만들어준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24차례 재의요구권 행사 중 무려 5차례(20.8%)가 본인 및 배우자 관련 수사에 대한 거부권 행사라는 점에서 이에 대해 자제가 필요하다”며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탄핵소추에 대해서는 “다수당은 무력화된 해임건의권 대신 탄핵소추권을 국정통제수단으로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더이상 탄핵소추가 예외적으로 사용가능한 제도라고 해석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다만 “정파적 목적으로 탄핵소추를 남용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직무집행상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탄핵소추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국회가 예외적으로 간주되던 권한을 일상적으로 사용할 정도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현행 헌법의 대통령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문제점을 경험하고 있는 만큼 현재 시스템을 개선해서 정치를 복원하고 대통령과 국회가 생산적이고 유능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토론자로 나온 이우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상적인 권한으로 상정된 제도가 빈번히 사용되는 상황에서 미비한 절차와 기준을 입법적으로 구체화하는 등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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